군을 믿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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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훈련소 퇴소식을 찾았다. 2개 대대의 훈련병들의 퇴소식인데 1개 연대는 돼 보이는 가족들이 몰려들었다. 주차하는 데만도 30분이 걸렸다. 겨우 겨우 차를 대고 식장으로 올라가는데 깃발을 든 훈련병들이 우렁차게 군가를 부르며 식장으로 집결하기 위해 행진해 가는 모습이 먼발치에서 보였다.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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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좌충우돌로 젊음을 누렸을 저 새파란 장정들이 오와 열을 맞추고 함께 발을 내딛으며 군가를 부르는 정경이 안스러우면서도 듬직했다. 들려오는 군가 중에 기억나는 구절도 많았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나도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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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5천만 인구 가운데 한때 군인이었거나 군인 가족의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남자들은 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군대를 다녀와야 하고 여자들도 애인이나 형제, 사촌, 조카 등등까지 범위를 넓히면 ‘군인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군인에 대한 인식은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언젠가 공항에 도착하는 미군 병사들을 향하여 민간인들이 정중히 경의를 표하고 박수를 보내는 동영상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감동적이었다. 모병제를 운용 중인 미국 군대가 그렇게 존중받는데 왜 5천만이 예비역 군인이거나 군인 가족 경험을 지닌 한국에서 군대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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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른바 ‘좌빨 정부’가 군 알기를 홍어 무엇으로 알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열을 올릴 수도 있겠으나 천만의 말씀이다. 군부 독재 시절, 육사 끗발이 서울대 법대를 깔아보며 통통 튈 때에도 ‘군바리’는 ‘군바리’였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어이없는 신문 기사 하나를 보면서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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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om/main/read.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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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다 보면 여러 번 기함을 하게 된다. 중앙일보 기자였다가 국방부 대변인으로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갔다가 다시 기자로 복귀했다는 기자는 청일 전쟁 당시 청나라 군의 “허위보고, 잘못된 판단, 전투의지 결여”를 지적하며 그 때문에 일본군에 지고 망국의길로 접어들었다고 안타까워하고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패배가 “군에 대한 군통수권자의 잘못된 인식과 독단이 낳은 응보”라면서 얼렁뚱땅 청나라와 미국의 예를 오늘날에 갖다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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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령부 대령이 국방부 장관을 들이받으며 보고했다 안했다를 따지는 건 청나라 군대의 예이고, “충성” 경례를 붙이며 ‘군을 믿어달라고 몸부림치는’ 군인들을 못믿는 문재인 대통령은 곧 독단에 빠진 히틀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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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청나라군이 일본군에 패한 가장 큰 이유는 일선 장군들의 무능에 앞선 청나라 정부와 지휘부의 패착이었다. 실권자 서태후가 함대 건설 비용을 이화원 토목 공사에 쏟아 부었다는 얘기는 유명하거니와 북양대신 이홍장 역시 청나라의 승패보다는 자신의 권력 유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즉 청나라 군대는 나라를 위해 싸우는 군대라기보다는 권력의 사리사욕에 만신창이가 된 군대였고 그래서 패한 것이다. 등세창 같은 용감한 장군들이 포탄 떨어진 배를 몰아 일본군에게 자살 돌격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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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독일 장군들, 참모들을 믿지 못해 전쟁에서 졌다는 말도 지극히 단선적이다. 기자 자신도 얘기하고 있거니와 히틀러의 독단 못지않게 독일을 파멸로 몰아넣은 것은 불의하고 부당한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명령에 대한 복종만을 군인의 의무로 알았던” 독일 장군들이기도 했다. SS의 만행에 치를 떨면서도 그 만행을 막아서지는 못했던 장군들, 긴급한 상황에서 히틀러의 잠을 깨우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던 원수들은 이미 프로이센 이후 긍지 높았던 독일 장군들이 아니었다. 즉 부당한 권력에 빌붙은 수족임을 자처했고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저버렸기에 장군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패배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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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위의 기자가 묵은 가래 토하듯 외치는 소리, “왜 군을 믿지 못하는가.”의 답을 얘기해 보겠다. 아마 그 외침은 기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일부 군인도 그러고 있으리라. 바로 그 갑갑함(?)이 불신의 원인이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모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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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우리 군의 흑역사 때문이다. 물론 우리 군에는 6.25 당시 ‘맨주먹 붉은 피로’ 인민군과 중공군을 맞아 싸우고 승첩을 거두었던, 또 4.19 때 출동했으나 데모 군중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지 않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했던 자랑스런 역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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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 군인들이 전방의 탱크를 빼돌려 민주주의를 깔아뭉개고 적의 심장부를 타격하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특수부대가 국민의 머리를 타격하고 대검으로 심장을 찔렀던, 그리고는 자기들이 권력을 차지해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해먹을 것 다 해 먹고 사람 잡을 대로 잡았던 시커먼 흑역사가 엄연히 똬리를 틀고 있다.
물론 ‘마지막 계엄령’은 40여년 전 일이다. 그런데 40년 전에는 꼬꼬마 아니면 기껏해야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을 나이의 군인들이 국회의 탄핵이라는 대통령의 위기를 맞아, 그 위기를 몰고온 국민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40년 전처럼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고 군인이 총 책임을 맡아 국정원도 그를 보좌하고, 국회의 결의마저 효율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수단을 획책한 ‘계획’이 나왔다면 대관절 그걸 어떻게 단순한 ‘계획’으로 무마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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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자체가 무모하고 비민주적이며 40년 전의 역사로부터 컨닝을 구사한 흔적이 역력한데 이 무도한 집단 (기무사령부)과 그에 명령을 내린 누군가를 어떻게 그냥 놔 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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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군이 존중받지 못할까. 가슴 아픈 일이다. 군인 가족으로서 내 아들이 길을 가는데 누군가 ‘군바리’라고 부르며 멸시한다면 소줏병을 그 머리에 내려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군의 역사 인식이 지금처럼 천박하다면, 군이 대한민국 역사에 먹칠을 했던 역사에 지금처럼 둔감하다면, 흑역사 역시 역사임을 받아안고 그 흑암을 명예로 덧칠하지 못한다면 군은 계속 신망을 얻지 못할 것이다. 더하여 “왜 우리를 못믿는 거야?”라고 가슴만 치고 앉았다면 그 행동과 태도 뿐 아니라 지능마저도 의심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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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양민 학살 때 살기 어린 총구가 불을 뿜기 직전 한 남자가 외쳤다. “국민 없는 나라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국군은 총알로 그 질문에 답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군은 그랬다. 대저 역사를 보면 외침에 가장 허약한 군대가 자국 국민들에게 가장 잔혹했다.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이 저지른 보도연맹 학살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던가. 그 켜겨이 불명예를 씻어낼 일도 한참이지만 일단 발등의 불부터 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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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몰려들어 초병이 총을 빼앗길 상황이면 생명이 지장 없는 하반신에 총을 쏘아도 좋다.”는 매뉴얼은 당연했다. 그러나 광주의 참상을 잊고 다시 공수부대를 시민 앞에 들이밀고, 국회의 결의마저 봉쇄하고, 국민의 탄핵을 받은 권력자의 보위에 목숨을 건 애완견스럽고 도사견스러운 ‘계획’만큼은 그 근원부터 체계까지 세세하게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기무사령부가 그런 일하라고 있는 조직이 아니지 않은가.
그 부대에서 25년 근무했다는 명예로운 대령. 그 사람이 그런 짓하면서 명예를 누렸다면 그 명예는 명예가 아니라 멍에다. 마땅히 제거해 주어야 한다. 지금 군인들은 왜 우리를 믿지 못하는가 가슴을 칠 게 아니라 도대체 이토록 군인의 명예를 더럽힌 자 누구인가 눈에 불을 켜야 한다. 대한민국 군대는 통수권자의 명령에 따르는 군대이기에 앞서 민주 공화국의 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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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에 경의를 표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