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직선으로 날아오는 묵직한 군화의 밑바닥이 보이는 순간 영혼이 유체이탈 해 버렸기 때문이다. 내 허리둘레를 닮은 참모의 허벅지가 돌진해 오는데 어떻게 제자리에 버틸 수 있었겠나. 176cm에 68kg(그때는 그랬음)으로 꽤 날렵한 몸매였던 나는 딱 벌어진 어깨에 옷걸이까지 기가 막힌........ 몸은 장풍에 맞은 듯 움찔 뒤로 물러났고 영혼은 훨씬 더 뒤로 도망가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라면 괜찮았다.
참모는 분이 안풀렸는지
"이 놈, 군기교육대에 보내버려!"
만약 잘못 틀었던 애국가를 끄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대부분은 엉겹결에 넘어갔을지도 모르고 알았다 하더라도 고작 5분인데 뭔일이 있었겠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쭈욱 가 보는거지. 벽시계를 몰래 5분 앞으로 돌려 놓았다면 속았을지도 모른다. 그 잘 돌아간다는 군대 시계니까 참모도 사단장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시계탓이라 우겼어야 했다. 손목시계의 바늘이라도 돌려서, 이 시계가 문제였다고 변명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면 그럴테지만 내 젊음에 융통성이란 없었다. 군기 교육대에는 시계 대신 내가 가야했다.
헌병들이 간지나게 행진하며 올라왔던 길을 나는 터덜터덜 내려갔다. 참모가 내린 두번째 미션은 완전군장이었다. 주임원사 할아버지의 유들유들한 배려에 힙입어 20kg 정도까지 줄어든 베낭을 메고 위병소 옆 헌병대 건물 앞에 섰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헌병대 건물 안쪽 구석에는 철창이 있었고 군인 몇명이 앉아 있었다.
저게 말로만 들었던 영창인가?
설마 저기 들어가라는 건 아니겠지?
나보다 늘씬한 헌병 한 명이 통유리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웃고 있었다. 사발통문이 돌았겠지. 헌병이나 조교들은 작은 소리로 말해도 상대방을 긴장시킬 수 있는 마성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 단호함에는 사람을 기죽이는 내공이 실려 있다.
"신고한다, 실시."
"어쩌구 저쩌구 해서 군기 교육대에 입소할 것을 명 받았습니다!!"
헌병대 앞 작은 연병장은 육상 트랙처럼 타원형으로 줄을 그어 놓았다. 족구장 두세개 들어가면 꽉 찰만한 크기라서 둘레는 50미터 남짓 될 것이다.
헌병의 명령에 맞춰 나는 뛰기 시작했다. 주구장창 연병장 트랙을 도는 일이었다. 영창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가지 않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었다. 20대 초중반이면 20kg 정도 메고 뛰는 일은 할 만하다. 비 쏟아지는 날 축구공 하나 들고 하루 종일 운동장을 휘저었던 게 불과 2년 전이었다. 자신감은 충만했으나 "군기"와 "확립"이라는 큰 구호소리를 오른발에 맞춰 하염없이 뛰는 일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빈 운동장을 축구공도 없이 어떻게 뛰란 말이야.
군화에 달린 자석이 땅을 무겁게 끌어 당기고 5월의 햇볕이 견딜 수 없이 뜨거워지면서 내 구호소리는 시들해져 갔다. 그럴 때마다 헌병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큰 소리로 복창할 것을 지시했다. 아까 국기 게양하던 놈이 틀림없다.
보팅게이지 100퍼를 넘나들던 체력은 급속도로 고갈되어 갔다. 연병장이 거대해졌다. 점심시간은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50분 뛰고 10분 휴식. 30분 뛰고 5분 휴식이었나. 아무렴 어때. 10분 뛰고 50분 휴식이 아니라면 의미없는 기억일 뿐이다. 휴식이란 군장을 풀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것을 말한다. 의자 같은 것에 우아하게 의탁하거나 급작스러운 학구열에 불타 올라 책을 펴보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저 바람에 땀을 식히고 주인 잘못 만난 서러운 어깨와 다리를 토닥거리는 것 밖에는.
한바탕 나 홀로 전쟁을 치르고 맞은 꿀맛같은 점심시간. 사단 사령부로 돌아온 나는 전우(?)들과 함께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평소에 비해 1.5배 정도 먹은 것 같다. 지금같으면 물 한모금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이다. 신이 젊음에게 주신 축복 두가지는 체력과 먹성이지 않을까. 그러나 이 두가지도 쉼없는 굴림앞에는 맥을 추지 못한다. 한시적인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 속쓰림과 헛구역질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달콤한 식사 시간에 이런것까지 예측할 수 있는 연륜 따위는 아직 없었다.
짧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헌병대로 향했다.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탈영하지 않을 바에야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깟일로 탈영까지 생각하는 것은 쫀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주임원사가 "그만하고 근무해" 해주길 은근히 기다렸지만 나 없이도 민심처는 잘 돌아갔다. 오후 일과를 위해 군장을 메고 문을 나서는데 불쌍하고 애잔하게 쳐다보기는 했다.
오후 일과 내내 점심시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시적 역류성 식도염때문에 신물이 목젖까지 오르락거렸다. 바싹 마른 침을 간신히 끌어 모아 꿀떡 삼켜가며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위산을 막아냈다. 과식한 탓에 옆구리가 쑤셔서 복창 불량이라는 지적을 여러번 받아야 했다. 땀을 샤워하듯이 쏟아내도 시간은 가지 않았다. 그 잘 간다는 국방부 시계는 사실 매우 느린 시간의 흐름을 비꼬는 이미지였다. 차라리 영창에 넣어 주기를 바랐다. 철창안에서 1시간만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면 별을 달겠다, 라고 망상했다.
군기 교육대라기 보다는 군기 교육을 위해 단지 헌병대에 보내진 것 뿐이지만 나의 군기는 철저하고 날카롭게 확립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