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이 길은 차량 두대가 간신히 비켜갈 수 있다. 무슨 낭만이 있는 길이냐 하면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초입부터 중형마트가 정체불명의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그 옆에는 샌드위치 판넬로 지은 음식점들이 주욱 서 있다.
삼겹살, 족발, 갈매기살 등은 돼지로 먹고 사는 집이고 참치로 먹고 사는 집은 없어졌다. 밥집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인생의 뒤안길을 전문적으로 형상화하는 사진가가 있다면 그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가 있다. 50평은 됨직한 비닐하우스이다. 소주,맥주,막걸리와 셀 수 없이 많은 안주를 팔고 있다.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간이 의자가 볼품없는 테이블 주위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안주라고 해 봐야 닭똥집, 닭발, 파전,,, 무지 많지만 뭐 이런 류다.
이런 시골스런 분위기에 허름하기까지 하다면 뭣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반전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이 드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고 서빙하는 아줌마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장면 같은거.
이 집은 장날이 아니면 파리 날리는 집이다. 집세나 인건비의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가게를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이 동네에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포스에 이끌려 한 번 온 적이 있다.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두 번 온 사람은 없다" 식의 어떤 아류적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리는 집이다.
그러나 옆 집 할아버지 볼 언저리에 깊게 패여 있는 주름살같은 느낌을 난 지울 수 없었다. 줌을 한껏 당겨 그들 삶의 공간을 의무감으로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큼직한 약국 몇 개와 7과11 편의점이 없다면 이 거리는 30년 전과 별반 다를게 없을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5층짜리 아파트 단지와 꽃을 함께 파는 옹기항아리집이 더욱 그렇다.
이 거리 뒤편에 있는 재래시장은 얼마전 거대한 초현대식(?) 지붕을 덮어 씌웠지만 그 아래에서 장사하는 방앗간, 반찬집, 옷가게, 신발가게, 청과점, 분식집 내부는 초현대식 문명의 혜택을 입지 못했다.
작은 사거리 귀퉁이에 있는 구두 수선방은 반 평 남짓한 컨테이너같은 깡통이다.
그 안에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사람이 앉아 있는데 막상 구두 고치는 손님을 본 적은 없었다. 컨테이너에는 "금 은 삽니다"라는 글귀가 있어서 이 아저씨의 재력을 가늠할 수 있다.
간판도 없고, 그래서 브랜드도 없는 오래된 시장통 빵집 분위기를 아시는지…. 매장에는 빵 굽는 기계 몇 대가 있고 빵들은 가게 앞에 진열되어 있다. 빵을 살라치면 일하다 나온 아줌마의 위생장갑을 벗는 수고로움에 미안한 마음도 살짝 든다. 맛 따위는 묻지 말자.
21세기 시골 읍내의 풍경을 그리고 싶다면 이 거리를 커다랗게 둘러싼 2차선 도로변으로 나가야 한다. 그 곳은 참기름 짜는 집과 최신 핸드폰 사양을 광고하는 무슨무슨 텔레콤이 기묘하게 같은 시간을 다투고 있다. 그래서 최소한 '최신'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반면 이 골목은 시간이 한산하게 흐르는 곳이다. 길잃은 강아지가 어슬렁 거리면, 나와바리 정찰 나온 동네 똥개 쯤으로 생각하고 지나치게 되는 곳이다. 아파트 담벼락은 절반 쯤 허물어져 있고 더블 정장을 입고 지나가면 왠지 쑥스러워, 길 가를 따라 걷게 된다.
이 길은 기온이 올라갈수록 삭막한 곳으로 변신한다. 좁다고는 할 수 없는 길에 풀 한포기없이 먼지만 날린다. 여름이면 모든 것이 사막의 신기루를 뒤덮고 있는 아지랑이 같다. 벚꽃도 올라오지 않은 봄이지만 돌이키면 이 거리의 여름은 그 만큼 메말랐다.
특색 없고 실용적이지도 않으며 어느 시골을 가도 몇 개 쯤은 있을 법한, 우리 아버지 약삭빠른 계산이 곧잘 먹힐 것 같은 길이다.
이 공간에서는 일제가 그어 놓은 길을 중심으로 6.25식 비닐하우스와(진짜 그 시대의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새마을 운동식 시장 골목, 80년대의 질곡을 묵묵히 버텨 낸 아파트,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최첨단 건축기법이라 할 수 있는 샌드위치 판넬까지 무차별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길을 조잡한 난개발의 서자쯤으로 이해하면 적당하다. 200미터 남짓 한 이 거리를 아무 생각없이 지나가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그런 거리이다.
장날이 오면 이 거리는 온갖 술렁임과 설레임이 넘친다.
거리 양쪽으로 파라솔들이 늘어선다. 파라솔 밑에 좌판들이 자리를 잡으면 오가는 행인들이 나머지를 채우게 된다.
장 날 풍경은 다음 번에 포스팅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