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얀 나무의자와 커피
한 생애 갈아 내린 쓴 맛 한 모금
입가에 묻어나는 햇볕 한 줌
나이 먹은 나무의자에 앉으면
목덜미에 부서지는 바람
여기 봄날
아침 흘기는 이슬
차츰 스러집니다
낡고 오래된 하얀 페인트
또각또각 부러뜨리다
겉돌아 일어난 생채기
손 안에 쓸어담아 봅니다
그저 무심하게 돌아온 계절에
생명은 일제히 소리치고
분에 넘치는 호들갑으로
잠을 설어도
그것은 산비탈 구르다
운좋게 한 생을 누린
커피콩같은 것입니다
2
암호화폐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노트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핸드폰과 집에 있는 데스크톱으로는 맘 편하게 코인의 세계를 탐닉할 수 없었다.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아내에게 급 비굴한 포즈를 취하며,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개인 노트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코인 생태계의 발전 가능성부터 설명했다. 마침 뉴스마다 비트코인으로 도배되던 때라 설득이 어렵지 않았다. 해킹으로부터 안전한 지갑이 있어야 하고 코인마다 판이한 접근법 때문에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데스크톱으로는 복잡한 코인관리를 할 수 없다는 부가설명도 덧붙였다. 설득은 되었으나 약간 미심쩍은 눈치라서,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비트코인 가격을 하루 한 번씩 들이댔다. 어느 날 아내는 묻지도 않았는데
'비트코인 2천도 넘겠던데'
라는 의미 있는 멘트를 나에게 던졌다. 며칠 후 노트북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깟 비트코인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탐욕이라는 숫자의 허상에 아내를 빠뜨리는 전략이 주효했다.
그 후 지금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스팀잇을 했다. 아, 술을 과하게 마셨던 며칠은 빼야겠다. 지금까지도 아내는 내가 코인으로 뭔가 하는 줄 알고 있다. 스팀잇을 하고 있다는 건 모르고 있다.
퇴근 후 앉은뱅이 밥상에 노트북을 올리고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깨작대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식구들은 알 도리가 없다. 심지어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빠 방해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기도 한다. 아내는 내가 돈 벌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아이들은
'아빠 부업 해?'
보상받는 스달로는 돈 번다고 이야기하기 민망할 수준인데….
전체 코인판이 대세 상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스팀 가즈아….
스팀잇을 시작한 지 석 달이다. 얼마 전 아내가 넌지시 물었다.
"매일 뭘 그렇게 보는 거야?"
난 스팀잇 창을 재빨리 닫고 구글 이메일 창을 열었다. 메일 창에는 항상 코인 관련 뉴스와 몇 가지 ICO 소식이 들어와 있다.
"그러게 오늘도 볼 게 많네."
아내는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다.
먹스팀을 하기 위해 음식점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던 날에는
"안 찍던 사진을 왜 찍어? 어디 올려?"
이 정도 넘겨짚기 가지고 평정심을 잃을 수는 없다.
"그냥 남들 다 하길래 나도 한 번 해보는 거야."
믿는 눈치다. 아내는 내 거짓말을 남김없이 모니터링 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거짓말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코를 벌렁거린다고 한다. 내가 매일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과 코 벌렁거리지 않는 연습을 남몰래 하고 있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연습은 혹독하나 그 대가는 달콤하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옆지기에게 나의 글을 보여주는 것이 쑥스러울 뿐이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것처럼.
조만간 아내에게 스팀잇을 적극적으로 권할 생각이었지만 오늘의 포스팅이 내 발목을 잡을 것 같다. 블록체인 서고의 구석진 자리에서 두꺼운 먼지에 덮혀 아무도 이 글을 찾지 않을 때까지 아내는 스팀잇의 존재를 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