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리 들을테요...
오로지 대학 입시를 목표로 무미건조한 청소년기를 보낸 뒤에 한없이 메말랐던 나의 정서를 함뿍 적셔준 노래가 있었다.
시인의 마을
그땐 이 노래가 10년도 전에 만들어졌고 그것도 정태춘이 24살 때 만들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이 노래에는 20대 청년이 품은 희망과 70대 노인이 깨달은 삶에 대한 관조가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겨우 갓 약관의 나이에 접어들어 노래가 전하는 걸 글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정태춘이 부르고 싶었던 그 무엇을 나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정태춘을 감히 천재시인이자 천재음악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서 정태춘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정태춘 같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태춘이 78년에 1집을 발매하면서 활동을 개시했던 때는 우리 가요계에 통기타 바람이 한창 불고 있을 때였다. 트윈 폴리오 등 외국 번안곡을 부른 가수가 많았던 것으로 보아 우리 가요계가 서양의 옷을 빌려서나마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시기다. 하지만 정태춘의 노래는 통기타를 빌리긴 했지만 우리네 정서를 담은 우리 가락이 오롯이 살아있다. 1집에 '시인의 마을'과 같이 수록되었던 '목포의노래(여드레 팔십리)'를 들어보면 어깨 춤이 덩실덩실 절로 난다.
90년대 접어들면서 노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전까지의 정태춘의 노래는 이렇게 우리네 정서와 불교 신앙이 어우러진 삶에 대한 애환과 관조를 나타내었다. 개인적으로 90년대 이후의 정태춘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대한 실망과 냉소적인 세계관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북한강은 정태춘을 통해서가 아니면 떠올리기 힘들다. 북한강은 원래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남북한강이 만나 한강이 되어 서해로 흐를 때만 비로소 의미가 부여되는 다소 조연스런 강이었다. 하지만 정태춘의 '북한강'은 강물 속에 또 강물이 흐르는... 내 마음 속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강이다. 그래서 북한강은 꼭 새벽 물안개 필 때 으스스한 추위를 견디면서 마주해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새해 첫날 아내와 북한강에 갔다. 강변에 빼곡히 들어선 펜션과 카페들... 물론 수십년 전의 옛 정취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지만 정태춘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그 옛날의 북한강을 회고하는데는 꽤 많은 노력이 들었다. ㅎㅎ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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