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 떨리던 순간
"오늘 저녁은 콩국수야."
"나 콩국수 싫어하는데..."
나는 콩국수가 싫었다. 어렸을 때, 언젠가 콩국수를 먹었는데 그 콩국수의 콩이 문제였던 것 같다. 풋 콩 냄새가 심했다. 너무 비려서 몇 젓가락 먹지도 못 했다. 그 이후로 콩국수 이름만 들어도 비린 냄새가 났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콩국수를 무척 좋아한다. 여름이면 콩국수가 가끔 저녁상에 올라오는 일이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난 콩국수를 싫어하니까. 콩국수가 저녁으로 나오는 날에는 괜한 심통을 부리곤 했다.
이번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연례 행사처럼 여름이면 엄마는 콩국수를 만든다. 어느 콩국수가 저녁인 날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너 콩 좋아하잖아. 한 번 먹어봐. 도대체 뭘 먹었던거니? 콩국수가 얼마나 고소한데.'
비릴 것 같은데...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포기에 가까운 호기심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호기심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그것이 그 날따라 궁금했다. 왠지 오늘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 젓가락 국수를 집어올렸다. 조심스레 입 속에 넣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이렇게 긴장을 한 건 정말 오랫만이었다. 첫 맛은 별로였다. 역시나...그런데 씹으면 씹을수록 뭔가가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땡기는 맛! 한 젓가락을 더 집어올렸다.
그렇게 나는 콩국수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먹지도 않는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의 콩국수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 한 번의 시도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콩국수에 중독되어 버렸다.
나는 이렇게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 내면이 떨리곤 한다. 콩국수처럼 싫어하던 무언가가 좋아지는 순간, 반대로 너무나도 좋아하던 뭔가에 실망하는 순간에도 나의 내면은 진동한다. 나에게만큼은 진리였던 존재가 깨어지는 그 순간을 담담히 넘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좀 더 예민한 것 같다.
초등학교 때, 표지만 보고 연금술사라는 책을 구매했다. 부푼 마음으로 책장을 열였는데, 정말이지 한 글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한글이긴 한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따라가질 못 했다. 그렇게 닫힌 책장은 한 참이 지나 수능이 끝나고서야 다시 열렸다. 그리고 지금 연금술사는 내가 추천하는 책 중 하나이다. 나는 평생 이 책을 다시 읽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연금술사를 이해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고 위로받게 되는 순간, 나의 내면은 어김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 생각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면이 떨리는 순간들이 쌓이는 것 같다. 대부분 나의 진리가 깨어지는 순간은 시간이 흘러 마침내 용기를 낸 순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것. 조급하게 시도하면 오히려 나의 고정관념은 두터워질 뿐이다. 만일 이 가설이 맞다면, 이 점에서만큼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진다는 의미이기에.
언제 또 다시 나의 내면이 떨려올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언젠간 그 날이 또 찾아오지 않을까? 내가 나이를 먹으며 한 해 두 해 살아가는 동안 닫혀있는 눈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되어줄 순간, 나의 내면이 또 다시 떨릴 그 순간이 내 인생에 적어도 한 번쯤은 다시 찾아올 것이라 감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