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죽 길게 늘어놓는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면 그것은 그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고 재미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 사람과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라든가, 그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서라든가 등.
어떤 이유에서든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맞장구를 쳐준다면, 그 사람과 나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과 같다. 결국 그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댓가로 나에게 좋은 관계의 끈을 내미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상당히 차갑고 계산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인간은 모두 다 이처럼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교환은 매우 합리적인 편이다. 교환을 하는 것들의 가치가 비슷하다는 뜻이다.
돈을 주고 밥을 사야 살아갈 수 있다.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통해 좋은 관계를 얻어야 감정적인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교환 대상들의 가치는 서로 비슷하다.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우리의 무의식은 무엇을 주고 어떤 것을 받는지, 제대로 된 가치 교환이 이루어졌는지를 금새 파악한다. 한편 이와 같은 교환에서 가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면 자신의 교환 활동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어 상대방과의 교환을 중단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잔뜩 하면 왠지 그를 피하고 싶어진다. 내가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정신과 의사 혹은 심리 상담사 처럼 돈을 받는 사람들은 그 댓가로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 해결 방법을 찾아준다.
어떤 사람은 교환의 댓가를 나중에 받는 것으로 간주하고 한동안 주기만 하기도 한다. 매력적인 이성과 가까운 관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여 주고, 오랜 시간 공들여 잘해준다. 그 과정에서 당장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더라도, 언젠가 좋은 관계가 되면 행복한 감정이라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연인 사이에서 한 쪽이 갑자기 돌변해서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수 있다. A와 B가 연인 관계에 있다고 해보자. A는 B와 더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B의 말에 맞장구도 쳐주고, 맛난 것도 사주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B는 그런 A가 고맙지만 아무래도 A와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기에, A에게 뭘 더 해주지는 않는다. 어느날 A는 자신이 호구였음을 깨닫고 B에게 화를 내지만, B의 입장에서는 A가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자신은 A를 통해 교환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B가 보기에 A가 그동안 자신에게 해 준 것은 그닥 고마워할 것이 아니다. A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노력들은 그다지 큰 가치를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직장이 재미 없고 지루하며 스트레스 받는 일들의 뭉치덩어리인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월급을 주는 사람은 자신이 지급하는 돈에 고용인이 자신을 위해 해주기를 바라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용인의 상황이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더욱 더 부담스러운 일을 맡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 일에는 오너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고용인 입장에서 자신이 돈의 댓가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면 자신이 직장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주는지와 상관 없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고용주는 자신이 고용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쉽지 않고, 따라서 고용주와 고용인은 틀어지게 되곤 한다.
때로 고용주는 업무적으로 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주기도 한다. 업무적으로 유능한 다른 직원들이 보기엔 이것이 부당해 보이지만, 고용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돈이 매우 가치있게 쓰이고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그 무능한 직원이 고용주의 기분을 잘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때이다. 그 직원은 업무적으로는 몰라도 적어도 고용주 입장에서는 매우 가치있게 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보배일 수 있는 거다.
사람을 잘 쓰는 사업가는 바로 이와 같은 교환 관계를 매우 잘 파악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과 매우 합리적인 교환활동을 할 줄 안다. 많은 연봉 대신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안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고용인이 느끼기에 손해를 보고 일하고 있지 않도록 조절을 잘 한다. 그 과정에서 고용주는 분명 비슷한 가치의 교환이 이루어지면서도 자신에게는 돈이 남고 고용인에게는 그 외의 다른 것들 - 일의 보람, 성취감, 자기 계발 기회 등등 - 이 남도록 균형을 맞춘다. 이 능력이 현명하게 사람을 부리는 사업가가 가진 진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이같은 교환관계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파악 못하거나 알더라도 주거니 받거니를 잘 하지 못하는 거다. 물론 그게 문제가 있거나 잘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관계를 개선하고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인간이 교환의 존재라는 것을 숙지해야 하리라.
갑자기 복권 당첨된 사람이나 부모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 중 그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오히려 빚을 지게 된 경우 역시 이같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거액의 돈을 갑자기 받는다면, 그 댓가로 내가 무엇인가를 누군가에게 댓가로 지불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 대가 없이 생긴 거액의 돈은 우리의 사고 관념을 뿌리채 흔들어 버린다. 직감적으로 우리는 이 거래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동안 살면서 우리는 자신의 삶이 비등한 가치물의 끊임없는 교환으로 꾸려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데 아무 대가 없이 갑작스럽게 생긴 돈은 그동안의 자기 인생이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자신이 믿어왔던 틀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에 균형을 찾기 위해, 갑자기 생긴 돈을 마구 쓰기 시작한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받은 돈이 아니니 마구 써도 상관 없다는 의식이 마음 속에서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대가를 치르고야 만다. 어찌보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바로 낭비 행위인 셈이다.
함부로 욕심을 내지 말 것, 아무 대가 없이 공짜로 많은 보상을 가지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 돈이든 관계든 사랑이든 -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 마음 속에서 공평한 교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으니까.
거대한 것, 엄청나게 많은 이익을 기대하는 것은 문제 있는 바램이 아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 그에 합당한 대가, 즉 노력을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은 후에 실제로 그만큼의 이익을 얻은 후에 그것을 지키고 그것이 자기 인생에 행복의 밑거름으로 쓰이도록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마음 가짐이 아닐까 한다. 얻더라도 그것이 자기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금새 사라진다면, 비록 얻지 못한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얼마나 쓸모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