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와 관련된 근본적인 질문 - 돈이란 대체 무엇인가

rextoys(49)
Published in
#art
Words
832
Reading
4 min
Listen
Play
9y

justmachine.jpg

돈의 역사를 통해 돈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더 나은 이해를 위해서는 때로 현상을 단순화시켜 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돈의 역할부터 시작해 보자. 어떤 마을에 농사꾼과
양조장 주인이 있다. 농사꾼은 술을 원하고 양조장 주인은 쌀을 원한다.
이에 농사꾼과 양조장 주인은 쌀 한 말과 술 한 병을 바꾸기로 계약한다.
둘은 매일 쌀 한 말과 술 한 병을 가져와서 교환을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날 농사꾼은 곳간에 쌀이 거의 바닥이 났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농사꾼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술 10 병이 필요하다. 그래서 농사꾼은
양조장 주인을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손님이 와서 그러는데.. 일단 술 10병을 주시오. 그러면 다음 달에
쌀 10말을 주리라."

자, 우리는 농사꾼이 쌀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양조장 주인은 농사꾼의
말을 믿고 술 10병을 준다. 오잉? 농사꾼이 양조장 주인을 속인 것일까? 대체
양조장 주인은 뭘 믿고 농사꾼에게 쌀도 안 받은 채로 술 10병을 준 것일까?

그동안 농사꾼과 양조장 주인은 오랫동안 매일 쌀 한 말과 술 한 병을 교환해
왔다. 이 과정에서 양조장 주인과 농사꾼 사이에는 신용이 생기게 된다. 바로
이 신용을 보고 양조장 주인은 술 10병을 기꺼이 내놓은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추상적으로 말해보자. 엄밀히 말하면 농사꾼은 양조장
주인에게 무엇인가를 주었다. 뭘 준 것일까?

바로 '신용'을 건넸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신용'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을 건넸다는 것이?

생각해 보자. 같은 마을. 매일 보고 거래해왔던 관계. 농사꾼은 양조장 주인과
신용을 쌓아왔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지만, 신용을 쌓았다면,
그 쌓은 신용을 건넨다는 말이 그렇게 이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조금 바꿔서 이야기해 보자. 양조장 주인이 한 달 후에 농사꾼에게 쌀 10말을
달라고 했을때, 농사꾼이 그 때도 쌀을 구비해놓지 못해 양조장 주인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면, 그 순간 농사꾼이 양조장 주인에게 건넨 신용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둘 사이에 그동안 쌓아온 신용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것을 이번에는 단어를 바꿔서 이야기해 보자.

농사꾼이 한 달 후 양조장 주인에게 쌀 10말을 내놓지 못하면, 농사꾼이 양조장
주인에게 건넨 신용이...부도가 난 것이다.

자. 다시.

농사꾼과 양조장 주인은 오랜시간 거래를 했고, 그로 인해 신용이 쌓였고,
농사꾼은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신용을 양조장 주인에게 주고 술 10병을 받았다.
양조장 주인이 한 달 후 쌀 10말을 받으러 왔을때 농사꾼이 쌀을 주지 않는다면
그 신용은 흐지부지된다. 즉, 부도가 나는 상황과 같다.

둘 사이에 분명 돈을 주고 받은 적이 없는데... 신용을 주고 받는 모습은 분명
돈을 주고 받은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신용이 돈이요, 돈이 신용이라는 말은 바로 이때문이다.

위 이야기에서 농사꾼과 양조장 주인이 신용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매일
거래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옛날에는 마을의 규모가 작아 한 다리 건너면
금새 아는 공동체에 속했을 것이고, 이와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끼리는 서로
신용을 쌓기가 쉬웠을 것이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상평통보를 비롯해서 많은 돈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동안
자주 쓰이진 않았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모두 마을 공동체에 속해 있었고
거래할 것들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워낙 가난해서 공동으로
물자와 식량을 쓰기도 했고.. 모두 가난하고 서로 얽혀 있고 한 집 건너 금방 아는
이런 공동체에서는 굳이 돈을 쓸 필요가 없다. 매우 굳건한 신용이 금새 생기기
때문이다.

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도, 주막에선 외상을 걸어두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쌀집에서 역시 언제 돈을 갚겠다는 기약도 없이 쌀을 퍼주기도 했다. 이는
사람들이 착하고 순수해서라는 이유(물론 그것도 한 몫 하다만)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지만 마을 공동체 안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쉽게 믿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고,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의 사람들이 많아지고, 거래할
것들이 많아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용은 금새 빛을 잃고 만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돈이다. 돈은 정부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농사꾼과 양조장
주인이 매일 거래를 해서 신용을 쌓지 않고도 신용을 서로 건네줄 수 있게 해준다.
농사꾼은 필요할 때 돈을 주고 술병을 살 수 있고, 양조장 주인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돈, 신용에 대한 개념 확장이 서구 사회에서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동양의 나라들은 대부분 집단주의, 전체주의,
공동체주의 사회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용 대신 굳이 돈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돈은 교환의 편의성 때문에 사용되어 왔을 뿐. 동양 사회에서 돈은 신용 보다는
가치 저장과 거래의 편리함이라는 기능으로 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일찍부터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는 보다 더 증명이 가능한,
눈에 보이는 신용이 거래에 필요했다. 그래서 서구 사회는 처음에는 은화와 금화처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물질을 사용해 그것을 신용이 붙은 돈으로 사용했다. 여기서의
신용은 가치에 대한 신용을 말한다. 은화와 금화는 심지어 특정 국가가 보증해주지
않아도 가치가 있었으니, 무역에서도 자주 사용될 만큼 믿음직스런(?) 돈이었다.

그리고 유태인을 비롯, 자본가들은 일찍부터 돈이라는 것이 사실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신용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오랫동안 돈을 사용해 오면서, 금 혹은 은
이외에 지급 보증 서류를 발급해도 정부가 공인만 해주면 아무 문제 없이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더욱 더 발전해서 이미 존재하는 돈보다 더 큰 액수의 돈을 '지급 보증'
이라는, 언젠가 반드시 지급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통해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 보다 훨씬 큰 액수의 돈을 창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고...

신용은 그 자체로 확장을 해서 증권, 파생 상품 등등으로 변신을 거친 끝에
나중에는 인간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거래되고...
몇 차례의 금융 위기를 거친다.

그런 금융계의 문제점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가상화폐다.

암호화폐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가상화폐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어차피 돈은 곧 신용이므로 기존의 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한
새로운 신용 거래 수단이 나타난다면 그것이 곧 더 나은 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아직 우리는 그 결말을 잘 모른다...

가상화폐와 관련된 근본적인 질문 - 돈이란 대체 무엇인가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