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11일 (화) 중독자의 회복일기
‘조롱과 놀림받는 것에 익숙해지자.’
늘 최면 걸 듯 주문을 외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얼마전 어떤 누리꾼이 제 마약일기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놀리듯 써놓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저더러 “기자직을 버리고 정신승리중인 코미디언”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속상했습니다. 그의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댓글을 썼습니다. “네. 정신승리라도 해야 살 것 같아서요.” 하지만 끝내 '보내기'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닫았습니다. ‘그래. 어차피 시간이 걸릴 일이야. 사람들의 조롱과 비판 하나하나에 신경쓰지 말자. 향후 10년간은 그래야 돼.’ 댓글은 전송하지 않고 치밀어 오르는 화는 속으로 삼켰습니다.
그 누리꾼은 제가 이전에 ‘차라리 중독성이 덜한 대마초 따위가 아니라 필로폰이라는 마약을 경험한게 다행이다’라고 쓴 표현을 문제 삼고 있었습니다. “김부선씨 말로는, 필로폰이 훨씬 끊기 어려운 마약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걸 경험한 것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해할 수 없는 정신승리중이다’”고 비판했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한 설명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누리꾼만이 그런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당연히 필로폰을 한건 제 개인적으로는 불행입니다. 어떻게 이게 다행이겠습니까.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중독자들은 어떤 고통에 시달리는지 설명할 수 있는 불행한 체험을 직접 했기때문에 기자로서는 ‘대마초를 한 것보다 필로폰을 한게 다행’이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개인의 불행을 사회의 공공재로 삼아 우리 사회의 중독 회복 정책에 기여하고 싶다는 제 완곡한 의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필로폰이 대마초보다 훨씬 중독성이 큰 마약이라는 설명은 아마 맞을 겁니다. 저도 의사에게 그렇게 들은 것 같습니다. ‘대마초 할래? 필로폰 할래?’ 처음에 이걸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면 저는 당연히 대마초를 택했을 것입니다. 김부선씨 말이 맞을 겁니다. 저는 대마초를 해본 적 없지만, 필로폰은 제가 경험해봐서 잘 알지요. 중독성이 어마어마 해서 쉽게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뭐와 비유할 수 있을까요. 더우면 땀이 나고, 슬프면 눈물이 나지요? 생리현상입니다. 이와 비슷합니다. 화가 나거나, 우울하거나, 어떤 육체적 욕구가 차오르거나 하면 마치 생리현상처럼 필로폰 생각이 나기 시작합니다. 가슴의 떨림을 느끼지요. 불행하게도 제가 마약을 접했을 때 필로폰과 대마초 둘 사이의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정확히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마초 할래? 그냥 담배 피울래? 원래 하던 필로폰 할래?’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저는 아마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저는 모든 마약이 싫을 뿐 아니라, 담배도 싫기 때문입니다. 술도 먹으면 그다음날 몸이 안좋음을 느끼기 때문에 즐기지 않습니다. 저는 국가에서 하지 말라는 것은 안하는게 좋다고 평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웃기죠? 근데 이런 제가 마약을 했습니다. 그것도 필로폰. 이해가 안가실겁니다. 그러나 이게 마약의 본질입니다. ‘당신은 원래 마약을 하고 싶어서 했던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대마초든 필로폰이든 기회만 있으면 뭐든 골라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질문하고 싶으실 겁니다.
답을 드리겠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저뿐 아니라, 많은 중독자들이 스스로 마약에 중독되고 싶어 이 길을 걸어왔던게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어떻게 마약을 시작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런 오해가 팽배한 것이지요. 오해는 벽을 쌓고 벽은 감옥이 되어 중독자들을 가두기만 바빴습니다.
오늘은 간단한 설명만 드리겠습니다. 중독자 개개의 사연은 세부적으로 다들 다르지만, 대체로 마약 중독은 일종의 사고에서 시작됩니다. 대체로 무엇을 투약받는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래서 ‘처음에 마약은 하는게 아니라 노출되는 것에 가깝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사람이 마약을 찾는게 아니라 마약이 찾아오는 것’이란 표현을 씁니다.
이해가 안되실 겁니다. 왜냐면, 저도 마약을 경험해보고 많은 중독자들을 만나고 대화나누기 전에는 여러분처럼 생각했으니까요. 조금씩 저의 이야기를, 그리고 제가 만나온 중독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릴 겁니다. 시간이 걸릴 겁니다. 서두를 생각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건, 늦어도 너무 늦은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서 우리 사회에 설명했어야 하는데 중독자들은 그저 침묵과 망각의 존재가 되는 것만이 최선이라, 이 지경까지 온 겁니다.
그래서 제가 나서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중독자와 우리 사회가 함께 회복과 건강의 길을 걷는 정책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설명하겠다는 겁니다. 머릿속 상념들을 말과 글로 잘 정리하는 재주를 가진 기자가 필로폰을 해서 다행이라는 건, 그런 뜻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다만, 비판과 조롱을 마주하면 힘듭니다. 중독자들이 생과 사의 경계에서 불안한 발걸음을 걷는다는 것은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저처럼, 사회에서 잊혀지기보다 사회에 적극 말을 걸기를 결심한 사람은 더욱 그 발걸음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정신승리 할 거리’들을 찾습니다. 많은 조언을 듣고, 격언을 기록하고 욉니다. 그렇게 안하면 정말 또 제가 무서운 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정신승리하고 자빠졌네.’?
네. 그렇게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내려합니다.
정신승리좀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