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컬트
저는 작년 7월부터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위한 그들의 모국어로 만드는 팟케스트를 런칭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외국인들이 한국 생활에 대해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도 잘 알지요. 그래서 한국에서 살려는 외국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 이 정도 사이즈의 책자로 배포합니다.
문젠 저게 예산 부족등의 이유로 해당 언어 사용자에게 배포되지 못하고 있고, 지역별로 다른 내용들을 한 곳에 뭉뚱그려서 놓아서 딱히 정확하지도 않다는 겁니다. 거기다 한국에서 이주민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이에요. 심지어 이주 노동자의 사망 원인 1위는 산재가 아니라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지요. 그나마 캄보디아인들과 네팔인들의 경우에는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편이라 이런 저런 문화행사들도 많이 합니다. 전국 단위로 축구경기도 벌이는 편이지만 다른 나라들의 경우엔 자국민들끼리 잘 모이지를 못합니다. 이 분들이 자기들끼리만 문제를 일으킨다면 상관없는데,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면 한국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 http://v.media.daum.net/v/20171123215043462
그래서 한국 살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재미있게 우겨넣는 방식의 팟케스트와 유툽 프로그램을 만들면 괜찮겠다는 생각은 몇 년전부터 해왔습니다. 그리고 작년 초부터 한국에서 터를 좀 닦은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을 만나 이런 형태의 미디어의 타당성을 따져봤지요. 대체로 사전 조사결과들이 맞았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 복병이 있더군요.
한국계 중국인들과 탈북자들의 관계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나쁘더군요. 탈북자들에게 한국계 중국인이란 자신들을 중국인에게 팔아먹는 중간상인들이었고, 한국계 중국인들에겐 자신들을 할 일이 없는 터무니없는 잘못을 하고 자신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이들이었습니다. 한국계 중국인들에 따르면 탈북자들이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이 굴러가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 사고를 많이 치다보니 아예 처음부터 탈북자라고 하지 않고 한국계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꽤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런저런 인연들을 동원해 탈북하신 분들과 인터뷰도 하고, 자유 아시아 방송 같이 생전 볼일 없었던 사이트에 올라간 글들도 꼼꼼히 읽어봤습니다. 한국 생활이 가장 힘들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탈북자일 수 밖에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과 베트남 모두 공산당 일당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자본주의화 된 국가들이지요. 나머지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약 2만명 정도되는 탈북자들만 남들보다 몇 배 더 고생해서 한국에 와 전혀 다른 체제에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뒤집어 엎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야 언어가 다르고, 문화적 배경이 다르며, 경제적 격차 때문에 한국사회 적응에 문제가 있는거지만 북한을 떠난 분들은 아예 세계관 자체가 다른거죠. PC운영체제로 치자면 다른 나라들은 드라이버 패치 정도만 하면 되지만, 북한은 운영체제 자체가 완전히 다른 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죠. 하태경 의원님도 잘 아시겠지만 북한 체제 자체가 전형적인 유사종교단체, Cult 잖아요? 컬트 집단이라는 특징이 기억나니 좀 옛날 이야기가 기억났습니다.
2 쿠바 유기농법 vs 주체농법
1990년대 초반,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연쇄적인 국가붕괴는 결국 사회주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소련의 몰락으로 이어졌지요.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면서 유류공급이 불가능해지자 바로 생존위협에 빠지게 되었던 것은 마지막까지 사회주의를 붙잡은 두 나라였습니다. 쿠바와 북한.
하지만 똑같은 시기에 식량부족에 시달렸던 두 나라는 전혀 상반된 길을 걷습니다. 똑같이 경제봉쇄를 겪었음에도 한 나라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미래’로 칭송받기 시작했는데, 또 한 나라는 최소 수십만명에서 최대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참극이 벌어지지요.
쿠바는 토지의 국가소유부터 포기하더이다. 그리고 국가가 운영하던 유통부분 역시 직거래를 허용하면서 시장이 가동하도록 했지요. 동시에 흙살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펴면서 지렁이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농업기술의 현대적 변형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생태주의자들에겐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결과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아마 하태경 의원님이 입장 정리하셨던 즈음이었으니 최소한 들어는 보셨을 일입니다.
석유가 없으니 장거리 유통이 될리가 없잖아요. 그러니 생산과 소비에 이르는 거리가 최적화된 구조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건데, 이게 도시유기농업의 혁신사례가 되어버렸던 거죠. 여튼 이 결과 쿠바는 90년대 중반에 경제봉쇄로 인한 식량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북한은 계속 나빠졌지요.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식량자급률이 65%대였는데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선 50%를 밑돌기 시작했지요. 우리의 20~30%에 비하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린 돈이 있고 북한은 돈이 없잖아요? 모자라는 것을 사올 방법이 없죠. 무엇보다 북한이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김일성이 만든 것이 실패했다는 것이었잖아요? 이게 하태경 의원님께서 입장 정리하신 이유 아니었나요?
김일성은 1973년 1월 17일과 22~24일 황해남도·평양시·평안 남북도 농업일꾼협의회에서 “농업생산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키자”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지요. 이 연설에서 김일성은 당시 농사 실패의 원인을 농촌의 기술력 부족, 기후 악화 등이 아니라 당조직이 '사상교양사업'을 잘 하지 못했고, 국가가 농업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으며, 당 간부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합니다. 그리고 1년동안 북한 전역의 협동농장들을 현지지도 하기 시작했죠.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이른바 ‘주체농법’이잖습니까?
민족해방이론을 좀 구리게 봐서 그랬는지 대딩 시절에 이걸 상찬하는 이들이 좀 뜨악했어요. 안 유물론적이잖아요. 농사 실패가 농사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하의 전도사들이 ‘주체교 전도’에 열과 성의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니. 이거 MB 503스러운 책임회피 아닙니까.
거기다 화학비료를 생산하기 위한 원유를 확보할 수도 없었잖아요? 쿠바는 자신들의 유기농 전환이 성공한 다음에 ‘남아 있는 사회주의 형제국, 북한’에게 자신들의 성공사례를 전파하려고 했었습니다. 핵심이나 다름없었던 지렁이를 선물로 줬다고 하데요. 그런데 북한은 그걸 무시했죠. 거기다 꽤 오래전부터 북한의 산들은 민둥산이었죠. 남한보다 훨씬 더 추울 수 밖에 없는 북한에선 난방 등의 이유로 산의 나무가 동이 나고 있었잖아요?. 산에 나무가 없어지면 유량 관리가 안되기 때문에 홍수나 산사태 등이 발생하기 쉬운데, 나무 심는 수고를 하느니 거기다 계단식 논을 만들어버리는게 주체 농업이었잖아요.
의원님도 잘 아시겠지만 북한이 말하는 고난의 행군은 사실 북한 체제 모순 자체가 모조리 터져나온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을 통제하는 유일신앙의 교리를 수정할 수 없으니 굶어죽는 것을 방치했던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문제를 수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김일성은 94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은 김정일은 아버지가 창안한 주체농업을 현지지도 다니던 사람이었죠.의원님도 그렇게 생각해서 입장 바꾼거 아닌가요?
3대 승계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저보다 의원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김정일로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김정일이 가장 열과 성을 다했던 것은 주체사상 교리 해설서 혹은 강론서를 쓰는 것이었죠. 김정일의 대표저작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주체사상 교리 해설서잖아요. 교리 해설서를 쓴 사람은 교리에 주석을 달 수는 있어도 교리를 바꿀 수 없지요.
3 태만은 이자가 셉니다.
신의 절대성을 믿는 종교들은 신을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상징물을 만들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슬림은 알라를 쓰지 않기 위해 ‘자비롭고 자애로운 알라의 이름으로’를 상징하는 786이라는 숫자를 쓰지요.
기독교도 신의 아들과 그 아들의 어머니를 상징으로 쓰지 신 자체를 상징으로 쓰진 않잖아요? 초기 불교도 부처님을 상징하는 상징물을 처음부터 만들진 않았다고 합니다. 초기 불교에서 부처님을 상징했던 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곳에 있던 나무, 보리수 나무의 잎이었죠. 그런데 북한의 유일신앙 대상인 김일성 사진을 갖고 뭘 한다구요?
처음엔 장삼이사도 알고 있는 일을 두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 전직 여당 국회의원들이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근데, 사람을 평가하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적을 두고 평가해야 하는 법이지요. 그동안의 전력을 따라가 보니 많은 것들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더군요.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다가 갑자기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중국의 열병식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THAAD 배치 결정을 내렸던 정권이 의원님께서 여당 의원하시던 정권이었잖아요. 이 정도의 진자 운동을 하려면 어떤 확고한 철학에 기반한 디테일 같은에 있으면 안되지 않나요? 디테일이라곤 쥐뿔도 없는 주화파냐 척화파냐 같이 추상적인 형태가 가장 선명해보이는 법이잖아요? 뭐 선명한거 좋아하시는 거야 취향이니 그렇다치지만 정리해야 할 디테일이 많은 국가 정책 결정에서 뭔가 선명함을 추구하면 어느 한쪽을 무시하게 되지 않나요?
제가 알기론 이거, 상당히 심각한 정치적 태만입니다. 그리고 태만은 나중에 물어야 할 이자가 어마어마한 악덕 중에 하나죠. 의원님께서 여당임에도 당시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찬성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리고 현 대통령이 중국에서 굴욕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태만 때문이었잖아요. 그런데 계속 반복하고 싶으세요?
어 뭐, 저는 좋아요. 태만은 이자가 쎄게 추심되는거라 님과 같은 분들이 다시 여당이 될 확률을 줄여주니까요. 날이 다시 추워지내요. 설 명절 잘 보내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앙망합니다.
전대협 동우회 6기
Samuel Seong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