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2018, Seoul, Nexus 5x
뻔하고 예측가능한 이야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괴팍한 성미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사실 대부분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만큼 어떤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도 정말로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다행히 여기는 내가 직업 마인드로 글을 쓴다거나 의무감, 독자를 배려한 친절한 글쓰기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내킬 때에만 글을 적는 편이다. 스팀잇에 처음 가입했을 시기에는 "어쨌든 써야한다"는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냥 그러러니 흥- 하는 편에 가깝다.
숫자가 주는 만족감은 상당히 과장되어 있는 면이 있다. 사실 그 숫자는 삶에 있어서 별 것 아니거나, 환산된 교환 가치로 보더라도 보잘 것 없는 경우가 많음에도, 한번 시스템에 맛을 들이게 되면 헤어나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인간들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감정 중 하나는 "권태"라서,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류의 전통적인 놀이 중 하나가 땅따먹기 아니었겠나. 전쟁으로 발현되든, 투기나 사재기로 발현되든 말이다.
이미 일정부분 충족된 욕구에 추가적인 행위를 한다고 한들 더 많은 만족감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한계효용체감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쓰기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자족적 행위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는 편인데, 자족적 행위에 숫자가 묻는 것이 달가울지 그렇지 않을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 내 경우엔 어느샌가 숫자에는 굳이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계속해서 재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 재지 않는다면 본연의 모습이 나올 것이고 그게 제 몸에 맞게 편안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글을 생산하고 생산하며 또 생산하는 것에 대하여, 세계가 항상 깊고 넓은 것이어야만 하는지 아니면 그렇게 되도록 스스로를 담금질해야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꾸준한 무한 생산 같은 것은 도무지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의미가 있어야 하는, 당위적인) 생산보다는 단순한 기술(記述)이 마음이 든다.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산이 오히려 좋다.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야한다는 주문, 어찌되었든 의미있는 것을 담고 감화시켜야한다는 주문, 우리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어야한다는 주문, 내가 알고 느낀 것을 당신도 무조건 알고 느껴야한다는 주문, 재미가 있거나 흥미를 유발하거나 눈길을 끌어야한다는 주문, 여러 주문들이 올려진 생산이 결국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꾸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의문이 든다. 이런 주문들을 얼마나 보고 듣고 항상 접하고 있던가.
공허한 글이 좋다. 공허함이 끝까지 들어차서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글이 좋다. 바라건대, 이 글 또한 당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글이, 그런 공간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