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diary] 비오는 날이면 잎은 언제나 하강을 준비한다

qrwerq(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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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018, Seoul, Nexus 5x


아무 말과 아무 맥락이 글자 속에 숨어들어가는 글이 될 것이다.


시험을 치루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는 성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여러 검사들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MBTI와 같은 다소 캐쥬얼한 검사 말고, MMPI나 Rorschach, K-WAIS 같은 검사들도 받곤 했다. 시험을 치루고 점수를 받고 이에 다시 보완하는 - 일종의 피드백을 통해 다시 스스로를 개선하는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잘한 것보다 모자라고 부족한 것에 항상 더 집중을 해왔던 것 같기도 하고. 검사도 일종의 시험의 영역이라고 여겨서 그랬는지, 10년전 이맘때쯤에 WAIS-III 를 받아봤을 때, VIQ는 172 였지만 PIQ가 152 정도로 20점이나 모자라서, 점수에 만족(?)하기보다 오히려 그 부족분에 대해서 왜 그럴까 하고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ENTP의 기질에, 시험과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한 개선을 추구하는 성향이 합쳐지면, 상당히 정신없고 번잡하며 일복이 터지는 삶을 살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러다보면 내 페이스에 맞추어지지 않는 주위에 대해 답답해하거나 아예 놓아버리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한때 모든 것들에 대해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빡빡한 밀도의 시선과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지금은 밀도의 경계를 나누어주는 여백의 의미를 어느정도 알게 되었지만, 그 여백도 내가 직조하는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아직은 어색해하고 있다. 주체적인 삶을 강조하고 또 그렇게 살려고 하지만 모든 것들이 각자 주체적으로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어서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어야할 때가 있는 법이라는 것을 조금씩 마음으로 배우고 있다. 어쩌면 배운다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비오는 날이라고 해서 항상 잎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오는 날에 잎이 떨어질 확률이 맑은 날보다는 더 높을 것이다. 빗방울이 가지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하면, 줄기와 잎을 연결해주는 부분에 발생하는 미세한 균열이, 불규칙한 진동이 결국 연결을 떨어내는 시작이자 매개가 되기도 한다. 잎은 의지가 있는가? 내가 바라보는 잎의 의지는 어떤 것인가? 자의적인 해석과 의미가 빚어내는 세계에 대한 시선이 혹시 나를 가두고 있지는 아니한가? 아니면 외려 그 관점이 세계의 접힌 면을 조금씩 펼치고 있는가? 사실 이번 글의 제목인 '비오는 날이면 잎은 언제나 하강을 준비한다'는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러니 이 제목은 틀린 것인가? 우리가 부여한다고 믿는 그 의미가 결국 우리의 믿음 속에서 진실이 되는 순간, 우리가 느끼게 되는 세계의 풍성함이 결국 그릇되거나 거짓된 것은 아닌가?

자,이때쯤 되면 스크롤을 내리고 싶은 유혹이 들 것 같다. 도대체 qrwerq@qrwerq 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다행인 점은 내가 여기에 글을 쓸 때에는 문단의 분량을 고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 문장들은 사실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분량을 때우는 작업은 때로는 고되지만, 어떤 때에는 매우 편하다. 나는 잠시 나에게서 떨어져나와 내 머릿속을 헤집는 여러 상념들을 단지 건지고 꺼내어 펼쳐 놓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여기 이 글들은 거의 확실하게 당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무의미하고 주기적이며 반복적인 생산을 상당히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작업이란 얼마나 간편한가.


글은 흩뜨려 써야 제 맛이다. 항상 적는 일기에 상호텍스트 를 어설프게 발라놓기 같은 실험을 하기엔, 이 방식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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