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비켜선 화제로 서두를 뗀다. 인간은 하나의 사건을 제 나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간극은 해석과 해석 사이를 파고들어 벌려 놓는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사건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그처럼 해괴망측한 일을 벌이고도 탄핵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과거 정권도 비리가 있었으나 대통령이 탄핵되진 않았다며, 탄핵이란 결과를 이끄는 데에는 언론과 야당의 몰아가기가 한몫했음을 강조한다. 누구는 박근혜 탄핵의 스모킹건으로 작용한 태블릿피시가 조작됐음을 열변한다. 타자와의 대화는 소중하지만 이들(음모론자)과는 소통하기 어렵다. 해석과 해석은 서로를 등진 채 나아간다. 저편으로 건너뛰려다가는 추락하기 십상이다.
이견이 존재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쌍방의 얼굴에 침을 튀기며 논쟁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른 방법도 있다. (다툴 것 없이) 자신의 주장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이다. 애당초 박근혜 정부는 울퉁불퉁한 터전에 집을 세웠다. 평탄화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 녹을 먹는 자들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 국가 기관의 선거 개입은 옳지 않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면, 그것이 선거의 당락에 영향을 미쳤느냐고 덧붙이는 말은 쓸데없다. 전형적 물타기다. 박근혜가 세월호를 침몰시키진 않았다. 그러나 최고권력자로서 사후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박근혜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다. 그 끔찍한 재난 속에서 감쪽같이 비어 버린 420분가량의 시간을 설명하라는 요구였다. 그들은 침묵했고 침묵할 것을 강요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 발행 추친을 비롯하여 박근혜 정부의 악행을 깡그리 나열할 의도는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사건 하나로 박근혜가 탄핵됐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켜켜이 부채를 쌓아 올린 기업처럼 박근혜 정권은 성실히 악업을 수행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은 임계치를 넘어 둑을 터뜨리는 데 한몫했다. 국정농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박근혜 하기에 따라서 탄핵은 면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짓말하며 모르쇠로 일관하지 않고, 권력을 이양하고, 검찰 수사를 받았다면 이름뿐인 대통력직이나마 보전할 수 있었으리라. 반성하지 않고 거짓을 양산한 것이 탄핵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본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나는 사람이 멋있어 보일 때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다. 알쓸신잡(시즌2)을 보다가 그와 관련한 생각을 했었다. 해당 회의 중심 여행지는 목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사하며 여행 후일담을 하는 자리에서 세월호와 진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세월호에 대해 쓰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세월호라는 상징은 박근혜 정부의 연이은 실책과 탄핵이라는 주제로 나를 데려갔다. 그래서 글의 구조가 이렇게(이 따위로) 구성됐다.
(여타 사람들과 달리) 유시민 작가는 진도를 찾았다. 유시민은 세월호 침몰이 있은 후 진도행 발길을 끊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지역경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진도군민들도 위로가 필요하다, 얼굴을 봐야 말을 걸 수 있다, 일상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때 유희열이 한마디를 던진다.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란 노래가 생각난다고.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은 제일 아름다운 풍경일까. 그럴듯한 노랫말이 마음을 움직였다. 자신의 일로 세계를 해석하는 사람은 빛나 보인다. 유희열이 꺼낸 <풍경>의 가사는 당시 그들이 나누던 이야기에 알맞게 포개졌다. 물론 자기 직업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은 문제지만···. 그러고 보면 음악은 꽤 쓸모 있는 도구다. 몸소 노래를 부름으로써 상대의 직관을 건드릴 수 있다. 그 시공간에서의 유희열은 그들 중 가장 돋보였고, 참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