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제목을 파랑새는 있다, 로 쓰려 했다. 그런데 어쩐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아 검색해보니 내가 어릴 적 보았던 드라마 제목이었다.
파랑새는 있다, 가 20년도 더 된 드라마라 내용은 하나도 모르겠지만 몇몇 캐릭터들은 기억난다. 그중에서도 나는 차력사인 절봉이를 좋아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웃게 해주는 남자가 취향이다. 운 좋게 그런 남자를 일찍 만나 10년 넘게 사귀고 있는 중이다... 는 갑자기 왜 쓰고 있을까. 내 연애담은 언젠가 덜 부끄럽고 더 떳떳해지는 날이 오면 써보려 한다. 지금은 아니다.
요 며칠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왔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짱짱하게 떴다. 드디어 빨래를 할 날이 왔다. 혼자 사는 데다가 밖에 나갈 일이 한 달에 서너 번도 안 되다 보니 세탁기를 자주 돌리지 않는다. 보통 2주에 한 번 돌리는데, 그렇게 모아도 10kg 통돌이 세탁기가 절반도 안 찬다.
사실 이 세탁기의 정확한 용량을 모르고 있어서 글을 쓰다 말고 확인해봤는데 용량과 함께 제조일자도 알게 됐다. 2000년에 만들어졌으니까 올해로 무려 18세다.
이사올 때 중고로 산 제품이라 내가 쓴 기간은 10년밖에 되지 않지만, 생각해 보니까 10년도 상당히 오래 쓴 거 같다. 어쩐지 통 돌아가는 소리가 부쩍 시끄럽다 싶었다. 남은 시간 표시하는 부분도 맛이 가서 숫자가 제대로 안 뜬다. 그래도 아직은 빨래가 되니까 더 써야지.
첫 저자 보상에 이어 이오스 구매까지 흥분으로 들뜬 이틀을 보냈다. 이제는 다시 차분하게 글을 쓰는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넷북을 켜고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 넷북도 오래됐다. 남자친구에게 선물로 받은 지 10년 가까이 되어 간다. 그래서인지 세탁기처럼 맛이 가고 있다. 키패드가 고장나서 키보드를 연결해 써야 하고 소리는 음소거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화면은 멀쩡하고 하드도 망가지지 않았기에 잘 쓰고 있다. 스팀잇에 올린 글들도 이 넷북으로 쓴 다음 데스크탑 컴퓨터로 옮겨 한 번 고친 뒤에 포스팅한 것이다.
사진을 찍어 보니 오래된 넷북보다 더 오래 되어 누래진 벽지가 신경 쓰인다. 사진으로 찍기 전엔 저렇게 색이 바랜 줄 몰라서 깜짝 놀랐다. 문득 세계 호러 걸작선2 에 실려 있던 누런 벽지, 라는 단편 소설이 떠오른다. 생각난 김에 이 글을 다 쓴 뒤에 다시 읽어야겠다. 재미있는 소설은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다.
스팀잇에 사진을 올릴 때면 늘 조심스럽다. 여긴 글을 쓴 지 7일이 지나면 삭제도 수정도 할 수 없으니까. 가족까지 포함해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10명도 되지 않지만, 누군가 내가 올린 사진을 보고 나를 알아챌까봐 두렵다. 그래서 최대한 개인 정보를 알 수 없는 사진만 올리려 한다.
하지만 고양이 사진은 인터넷 여기저기에 올려서 누군가 알아볼 수도 있겠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그렇겠지만, 나도 내 귀여운 고양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사실 이 글도 고양이 사진을 올리려고 쓰고 있다.
내가 넷북 앞에 쪼그려 앉아 글을 쓰면 고양이들이 다가와서 달라붙는다. 추위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동물이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장소를 찾는 것이다. 지금도 내 옆에 고양이 두 마리가 달라붙어 있다. 이렇게.
첫째는 10살이 훌쩍 넘었다(얼굴이 보이는 고양이가 첫째다) 11살이나 12살, 어쩌면 13살일지도 모르겠다. 비가 많이 오던 날,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은 깨끗한 고양이가 거리를 돌아다니기에 지켜보다가 주워온 게 첫째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키우고 있다가 버린 듯싶었다.
이미 다 자란 상태로 집에 왔기 때문에 나이를 추정할 수 없다. 수의사 선생님도 첫째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다고 했다.
둘째는 10살이 다 되어간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새끼일 때 주워왔기에(탯줄까지 매달려 있었다) 첫째와 달리 나이를 확실히 안다. 사람 손을 타서 어미가 버리고 간 걸 데려왔다. 동물병원에서 고양이용 분유와 젖병을 사와서 매일 3,4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먹여 키웠다.
고양이는 생후 1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스스로 대소변을 누지 못한다. 어미가 핥아서 자극해줘야 한다. 그래서 젖은 수건으로 항문을 문질러서 배변 유도도 매일 해줬다.
새끼 땐 워낙 허약하고 비쩍 말라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수의사 선생님도 새끼 고양이는 보살피기가 쉽지 않다고,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려와 달리 둘째는 튼튼하게 자랐고 지금도 잘 살아 있다. 새끼 때부터 키워서인지 나한테 너무 의존하고 자주 울고 보채긴 하지만, 훌륭한 한 마리 어른 고양이가 됐다. 베란다에 들어온 쌍살벌을 멋지게 사냥한 적도 있다(첫째는 둔해서 사냥을 전혀 못한다)
오래된 세탁기, 오래된 넷북에 이어 고양이들까지 오래됐다. 가족들은 당연하고 친구, 남자친구도 다 10년 이상 사귄 사람들이다.
이렇게 익숙한 물건, 익숙한 사람들과만 어울리다가 새로운 사람들이 가득한 낯선 곳, 스팀잇에 왔다. 누구와 대화를 해도 새롭고 낯설다. 내가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처음 걱정했던 것만큼 힘들지 않고 즐겁다. 나와는 다른 삶을 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드라마보다 다큐 공감, 다큐멘터리 3일, 인간 극장 같은 프로를 즐겨 보던 어머니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내가 다른 분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재미를 느끼는 만큼, 다른 분들께서도 내 일상을 보며 재미있어 하길 원한다. 그런 마음으로 내 삶을 조금 더 꺼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