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역에서 젊은이들이 바글거리는 골목을 하나 지나서, 멋없이 막 지은 빌딩 맞은편에 형의 가게가 있었다. 압구정에 이런 곳도 있었어? 딱 그런 말이 나오기 좋은 골목이었다. 길은 넓었으나, 장사의 안목으로 보면 '흐르는 길'이어서 차나 사람이 멈추기 어려웠고, 묘하게 서쪽으로 비켜 앉은 길이어서인지 통행이 뜸했다.
형의 말대로, '다 망해서 나간 가게 자리'에 막 중국집을 차린 것이었다.
본문 中 발췌
△ 이연복 셰프의 목란
이연복은 대한민국 안에서 손꼽히는 중화요리 셰프이다.
그러나 여러 방송에서 중국의 요리사들 사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었고, 오히려 중국인들보다 더 뛰어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이 셰프의 특이점은 축농증 수술이 잘 못 되어 냄새를 못 맡음에도 현장에서 일을 하며 그 맛이 여전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연복은 책 속에서 후각을 ‘ 후각을 잃은 후로 오히려 미각이 더 예민해졌다.’고 말한다.
길을 가다 보면 중국집 배달통을 쉽게 볼 수 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그 철가방을 들고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가끔 난다.
나는 1959년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났다. 외가와 친가 모두 화교 집안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중국집에서 아버지가 주방장으로 일하기도 했고, 당시에는 장사도 꽤 잘되던 편이라 서너 살 때까지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상황이 변해버렸다. 외할아버지는 가게에 붙어 있지 않고 방황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장사도 바닥을 쳤다. 가세도 기울어 예전처럼 풍족한 생활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화교들이 그렇듯 나도 명동에 있는 한국한성화교소에 입학했다. 일반 공립학교와 달리 국가에서 교육비를 지원하는 학교가 아니라서, 등록금이 비쌌다. 부모님께서 3남 2녀인 우리 형제 모두를 학교에 보내기가 매우 벅찰 정도였다. 한 놈 등록금을 내면 다른 한 놈 등록금이 밀리고......그러다 보니 등록금 때문에 선생님께 혼나기 일쑤였다.
"등록금 안 낸 사람 다 일어나."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는 날이면 일어선 채로 수업을 해야 했다. 어떨 때는 등록금 안 낸 사람은 앞으로 다 나오라고 해서 칠판 옆에 세워놓고 수업을 한 적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다. 학교 간다고 하고 집에서 나와서는, 남산에 올라 시간을 때우다가 하교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다. 학교에서는 말썽꾸러기로 소문이 나서 계속 지적당하고 벌을 섰다.
"엄마, 나 차라리 일할래."
6학년 2학기가 시작될 때쯤, 나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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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가난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요리가 좋아서, 자부심을 느껴서(자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요리를 한다기보단 그저 이 길 말고는 다른게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중국인 화교들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 때문이었는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한정적이었고, 일반회사는커녕 공장에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화교들의 대부분이 중식당을 운영했다고 한다.
결국 초등학생의 나이에 일치감치 중식당에서 짜장면 배달일을 하며 생계를 시작한다.
심지어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말이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목란의 가장 잘 나가는 요리 중 하나는 바로 ‘군만두’와 멘보샤. 그리고 동파육과 탕수육이라고 한다.
△ 새우 살과 감자를 뭉쳐 으깬 완자를 식빵사이에 끼워 튀긴 ‘멘보샤’
△‘목란’의 군만두.
특히 인기메뉴는 바로 이 군만두라고 하는데 아래는 기름에 튀기고 물을 살짝 부어 뚜껑을 닫는 방법으로 위는 찐다.
무려 하루에 400여개 정도를 싼다고 하니 보통 노동이 아니다. 이 만두의 중요한 점은 돼지고기보다도 배추인데 고기의 육즙과 채소의 즙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가 속의 촉촉함을 결정하기 때문에 겉이 바삭하고 속이 촉촉한 ‘진짜 중화 군만두’는 셰프의 감각이 정확해야 할 것 같다.
이연복 셰프의 탕수육은 소스를 부어도 몇시간동안 바삭하기 때문에 소스를 따로 주지 않고 처음부터 부어진 상태로 내온다고 하니 평균 300번의 전화 통화를 시도해야 예약이 가능하다는 ‘목란’에 기어코 가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도 같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는 결코 장사치도 사업가도 못 된다는 걸 여러 번 느끼게 된다.
셰프 이연복은 오로지 ‘요리사’라는 자신의 위치에서 음식을 먹는 국민들을 위해 좋은 요리를 합리적으로 제공하며 공생하고자 하는 것에, 즉 좋은 요리사가 되는 것 자체에 마음을 쓰는 진정한 노동자, 기술자, 요리사라고 난 느꼈다.
자본주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난 어떤 계층의 사람이던지 자신의 자리에서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해야 할 본분이라고 생각하지 ‘이윤’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천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덤으로 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수명은 300년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 이연복이 평범한 사업가, 혹은 장사치였다면 난 이 책을 리뷰하며 그를 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모습이 기업과 개인들이 사회에서 해야 할 ‘기본’이란게 무엇인가에 대한 표본이 되고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느꼈다.
그는 초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렇게 책 한권을 썼다.
그의 인생에 애환과 진정성, 깊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사람이 책이다.’ 진정 누군가의 교훈이 될 만한 삶을 살았다면, 거기에 뭔가 풀어낼만한 양질의 이야기가 있는 삶은 살아온 사람들은 학문적 소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깊이 있는 글을 써내는 경우가 있다.
그는 국민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요리사이다.
하여, 난 오늘도 책을 여러분에게 추천한다.
이연복의 ‘사부의 요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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