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없이 영화보기를 실천하는 방법은 너무도 간단하다.
그냥 보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때처럼 말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모든 소리가 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과,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스토리를 알고 싶어 한다.
지금 화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스토리의 전개가 파악이 되지 않는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고 딴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에만 그렇다.
지금껏 우리가 해 왔던 방법과 정 반대로 가기 때문이다.
영화를 일 주일 이상 보다 보면 이내 적응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이렇게 해서 과연 영어가 될까?'
등등 수만 가지 잡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물의 행동,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운드, 색감 등에 감각을 기울이며
장면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보라.
인간에게는 잠재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무슨 뜻인지 머리로 이해하지 못해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시작을 하면 된다.
다만, 자막 없이 영화보기를 할 때에 주의사항이 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자막 없이 영화보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 토익과 같은 시험을 준비한다.
- 방금 들은 말을 해석하려 한다.
- 한글 자막이든, 영어 자막이든 자막을 본다.
- 영화를 공부하듯 반복해서 본다.
- 원어민과 만나 대화를 한다.
위와 같은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즉, 문자 노출을 없애야 하고, 오로지 '듣기'만 해야 한다.
읽기도, 쓰기도, 말하기도 병행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미 많은 것들을 학습했는데 기존의 패러다임과 병행을 하게 되면, 문자 간섭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볼 필요도 없다. 반복을 하게 되면 금방 자막없이 영화보기에 흥미를 잃고 '공부'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골라서 매일 다른 영화를 보기만 하면 된다.
물론 나중에 또 보고싶은 영화가 생길 수 있다. 자신이 즐겁기만 하다면 또 봐도 된다.
나는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매일 영어로 레포트를 써야하고, 회화 수업 시간에 말하기를 해야 했다.
그래서 위 조건을 지키기 위해 휴학을 하기도 하고, 경영학과로 전과를 감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생이라면 학교라는 틀 안에서 영어 문자 사용 환경을 절대 피할 수 없다.
경영학과에서도 영문과일 때보다 영어로 진행되는 전공필수 과목이 훨씬 더 많았으며, 졸업을 하려면 토익 점수가 있어야 한다.
나는 2015년에 완벽히 문자 노출을 피했고, 2016년에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실천했다고 볼 수 없다.
기존의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영어를 영어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불가능해진다.
내가 어학원에서 일을 할 때 호주에서 3년동안 살고 오신 한국인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분은 '치킨'을 '치킨'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꼭 'chicken'이라고 발음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이해가지 않았다. 아니, 누가봐도 한국인이면서 굳이 발음을 굴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자막없이 영화보기를 실천하기 시작하고 나서, 그 현상을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람에겐 이미 치킨이 'chicken'으로 인식되는 것이었다.
나도 그 이전엔 굳이 발음을 굴리지 않고, 생각해서 한국식으로 발음했던 것들이
나도 모르게 '쏘리'가 아닌 진짜 'Sorry'가 되어버렸다. 내가 일부러 영어처럼 발음하려 노력한 것도 아닌데, 그냥 영화에서 봤던 여러 상황들이 나의 현실에 나타났을 때 나도 모르게 똑같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영화를 수십 편 수백 편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 감정에 연결되어 있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아직 '듣기 과정'을 완성한 것은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더 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15년에 한창 영화를 매일매일 자막 없이 봤을 시절에 분명히 언어에 대한 나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전에는 들을 수 없던 원어민 강사의 빠르고 긴 문장이 아무 생각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나에게 전달된 적이 있었다.
'소리가 그대로 귀에 꽂힌다'는 느낌이었다. 순간 나는 내가 한국어를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약 3,000시간 가량(신생아가 듣기를 완성했던 시간) 오로지 '듣기'만을 하고,
그 이후에 원어민을 만나면 그들이 아무리 빨리 말해도 무슨 말을 하는 지 저절로 알아듣게 되고,
이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 때부터 '말하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말하기를 시작할 때 쯤에는 이미 어떤 말을 들어도 '듣고 따라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상태이다.
그러면 내가 접하는 모든 소리 input을 아주 빠르게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있다.
애써 공부하지 않아도, 애써 알아들으려 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게 바로 진짜 시작이다.
작년 어느 포럼에서 자막없이 영화보기에 관하여 발표하던 사진입니다 :)
다음 칼럼에서는 2015년~2017년 실천 중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하여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팀잇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팔로워도 안 만들고 시스템을 잘 모르고 포스팅을 한 탓에 힘이 빠지기도 했었는데, 어떻게 들어와서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신 분들 덕분에 힘이 나서 열심히 써보려 합니다! ^^
모두 설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