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중 어떤 이들은
이른 은퇴를 꿈꾼다.
물론 나이가 들면
반강제로 은퇴를 해야 하지만
그때의 은퇴란 단지 다니던 조직에서 배제된다는 것이고
자신이 세상을 등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모임을 찾아나서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새출발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면에서
'은거'는 '은퇴'와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다.
은거는 세속의 번잡함을 피하려 하는 것이고
은퇴는 새로운 번잡함을 위해 잠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아마도 은퇴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정의중에서
'사회적동물'
이라는 것이 설득력있는 단어라고들 말하는 것을 봐도
대다수의 인간들은 아마도 사람들속에서 존재가치를 확인하며
살아가길 원하는것 모양이다.
물론 그 사회라는것도
예전과 달리 '온라인'이라는 새롭고 신기한 형태도 있으니
아무래도 은퇴라는 용어가 좀더 현실적이다.
그야말로 은거라고 말하려면
온라인에서의 활동까지를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실망하면 초야에 묻혀지냈다던 선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틈나는대로 책을읽고
자연속에 동화되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시기
마음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비치는 모습은 그랬다.
남도의 어느 토굴에서 은거하며 여러날을 보낸다더니
뜬금없이 상경해서 이상한 행보를 하는 야당의 모 정치인을보면서
언짢은 생각이 들었던 이유도 그런것이다.
어쩌면
'은거'라는 단어를 잘못 갖다붙인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물들의 은거(?)와 달리
소박한 개인의 은거는 쉬울까?
아마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 관계도 없는 세상일이 끊임없이 심기를 건드리고
첨단 통신기기들이 가만 놔두질 않는다.
은거를 하건
은퇴를 하건
가장 중요한것은 경제적인 문제다.
얼마가 있어야 은퇴가 가능할 것인가.
개인마다 편차가 크니
관련 내용을 연구한다는 전문가들도
그저 개인이 원하는 생활패턴에 따라
몇가지 금액대를 산정해서 제시할 뿐이다.
얼마를 쓸것인가? 혹은
무엇은 포기할 수 없는가?
월 100만원을 쓰면 비참하고
월 500만원을 쓰면 행복한 은거 혹은 은퇴생활이 될까?
핵심은 단지 '습관화된 욕망'이다.
무비판적으로
그저 오랫동안 익혀온 생활습관을
마치 자신의 몸의 일부로 여기고
삶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언제나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을 앞에 세워두고는
여유가 없어서 '은퇴하지 못하는'
자신의 고된 삶을 애처롭게 여긴다.
그것 또한 각자의 선택이니
누가 간섭할 수 없다.
단지 그렇다는 이야기다.
신문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가정경제점검'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면
소득대비 지출의 적정성과
지출구성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그런 기사를 읽을때마다
내가 항상 놀라는 것이 있다.
4인가족 통신비가
거의 20만원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을 사용했을 정도로
정보통신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모두가 사업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 누구보다 일찍 인터넷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그저
가성비가높은 저가 스마트폰에
월6천원 요금제를 사용한다.
데이터500Mb에 통화가 200분 제공되는 상품이다.
나에게 그이상의 긴급하고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질좋은 공공와이파이나 무료와이파이가 풍부하게 제공되는
이 나라에서
무제한 데이터요금제를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아마도 각자에겐 이유가 있을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약간 있다는 계층에서도
핸드폰요금만은 나보다 더 지출하는거 같다.
무엇이 그런 욕망을 부추겼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소득에 상응하는 지출구조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행복이란 없다고 단언한다.
전세계가 거미줄처럼 엮여있다는 세상에서
'은거'를 들먹인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은거이든 은퇴이든
구속받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면
아니 최소한 불행하다는 느낌을 덜 받으려면
지금당장
자신의 '습관화된 욕망'에 대한 성찰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