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 3. 한결같아 좋아

naha(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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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을 많이 가립니다. 제가 사람을 많이 가린다는 것도 아내를 통해서 확신을 했을 정도로 아내는 저를 잘 압니다. 열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은 달라. ㅎㅎㅎ 저는 아내와 수다떠는 걸 워낙에 좋아해서, 제가 안 한 말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요, 그래서 아내는 제 성격은 물론 취향 등 저에 대해 빠삭하게 알지요. 암튼, 사람을 많이 가리는 저는 좋아하는 사람도 적습니다. 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저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은 만나기도 싫어하고 보기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장난이 아니죠.

저는 착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안 착한 사람을 병적으로 심하게 가리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착하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속물이거든요. 속물이라서 착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기본적으로 욕을 하지 않아야 하고, 비폭력주의자여야 하며, 남의 재산에 절대 손대지 않으며, 슬픈 일에 공감할 줄 알고, 무엇보다도 배려심이 매우 깊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인간이 갖춰야 할 제1의 덕목이 배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람 싫어하는 일을 매우 잘합니다. 일단 어떤 사람이 싫으면 쳐다도 안 보고, 말 걸면 불만스럽게 째려보고, 건들면 폭발해버리죠. 아내가 '오빠는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도대체 어떤 사람이 좋아?'라고 물어볼 정도입니다. 'ㅇㅇ은 ㅇㅇ이라서 싫어. ㅁㅁ는 ㅁㅁ라서 싫어. xx는 xx라서 싫어...'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저는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도 정말 너무 많더군요. 연예인도 죄다 싫어하는 연예인입니다. '노홍철은 시끄러워서 싫어. 정형돈은 묻어가튼 것 같아서 싫어. 유재석은 대상을 너무 많이 받아서 싫어. 김태호 피디도 싫어.' 무한도전 광팬인 아내와의 연애시절 저는 눈치도 없이 저런 말들을 내뱉어서 아내가 삐진 적이 있을 정도지요.

사람 미워하고 싫어하는 데 있어서는 너무하다 할 정도로 잘하기도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지나치게 잘하는 편입니다. 그냥 다 내줄 정도로 잘해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도 저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저는 좀 극과 극으로 극단적인 면이 있습니다. 저도 이런 제 성격이 싫습니다. 참 안 좋은 성격입니다. 회사에서도 누군가가 싫어지면 그 사람과는 반드시 싸우는데요, '내가 나가나 네가 나가나 한 번 해보자.'할 정도로 과하게 싸웁니다. 저는 참 불편한 사람이죠.

아,,, 너무 부정적인 말만 하네요. 흠... 이런 말을 하려던 건 아닌데... 암튼... ㅎㅎㅎ 제가 매우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더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 처제입니다. 처제는 아내와 제가 결혼하려고 처음 인사갔을 때 봤고요, 처음부터 우리 두 사람 편을 들어줬습니다. 제게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 제가 부족한 면들을 코치도 해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나중엔 너무 친해져서 둘이 밤새 술퍼마시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죠. 아내는 수유중이라 술을 못 마시니까 먼저 자고, 처재랑 둘이 새벽까지 마시고 같이 뻗어버린... ㅎㅎㅎ 착하고 사람이 너무 좋은데다가 예쁘기까지 합니다. 제 아내도 엄청난 미인이지만 처제는 아내와 비슷하게 생겼고 좀 더 마른 체형입니다. 저를 너무도 잘 아는 아내는,,, 제가 작은 체형을 좋아한다는 것도 아는 아내는... 제가 '처제 예쁘다'라는 말을 자주 했더니 질투를 한... 그래서 그 후로는 처제 예쁘다는 말을 안 합니다. 둘은 성격도 비슷하고 착한 것도 비슷해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처제의 둘째딸 백일이라서 처제네 다녀왔습니다. 제가 요즘 잠이 부족해서 많이 피곤했고, 감기까지 걸려서 몸이 영 아니었는데요, 그래서 오늘(자정이 넘었으니 어제지만) 거의 앉아만 있었습니다. 제가 평상시에도 애들이랑 놀아주는 걸 잘 못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뭐 평상시 대로 잘 못 놀아주고 있었죠. 평소 잘 울지 않는 울 큰애가 갑자기 울더군요. 아무래 달래도 울음을 안 멈춥니다. 아내도 저렇게 길게 우는 큰애를 본 적이 없기에 아내도 당황했지요. 저는 애를 업어보기도 하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보기도 하고 먹을 것도 주고 놀아도 줬는데도,,, 울음을 안 멈추더군요. 집에 오면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아기를 안고 있을 때부터 운 것 같아. 큰애가 아기를 보면서 '뭐야? 엄마가 왜 아기를 안고 있지? 나 또 동생 생긴 거야?'라면서 슬퍼서 운 것 같아. 둘 째 우리집에 온 날 기억하지? 자기 조리원 나와서 집에 온 다음날. 그날 큰애가 처음으로 울었잖아. 서러워서 운 울음."

"그 울음을 어떻게 잊어. 평생 못 잊지. 동생 데리고 온 날 정말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울었잖아."

"그날이 생각나서 운 것 같아. 오늘 자기가 아기 안고 있었잖아."

"에이 설마. 우리 민준이가 그렇게 기억력이 좋다고? 우리 민준이 자폐야."

"그래. 자폐인 건 나도 인정해. 그런데 오늘 민준이가 저렇게 우는 거 처음이잖아. 아무리 달래도 안 그치고 말이야."

"그건 그렇긴 한데. 오빠, 우리 민준이 기억력 나빠. 내가 엄마야. 내가 알아."

"아니야. 동생 생긴 줄 알고 운 것 같아."

그리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신기하게 안 울더군요. 그때야 아내가 물었습니다.

"오빠, 민준이가, 나 아기 안았을 때부터 운 거 맞아?"

"그래. 그때쯤부터 울기 시작했어."

"에이. 설마."

그러고 좀 이따가 처제와 통화하는 아내. 아내는 전화를 끊더니 한참 웃습니다.

"처제가 뭐라는 지 알아? '형부는 한결같아서 좋아. 멋있어.'라고 하면서 웃더라."

"내가 한결같아?"

"어.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애랑 못 놀아주냐고. 그래서 멋있대."

"내가 좀 멋있긴 하지. 하하하."

"그래. 한결같아서 좋대. '언니한테 한결같이 잘해줘서 좋아. 형부처럼 착한 사람이 어딨어. 언니한테도 한결같이 잘하잖아. 변함없이 잘해서 멋있어. 그런데 참,,, 어떻게 애들한테도 한결같이 못하냐. 이제 좀 애들이랑 놀아주는 법도 배웠을 것 같은데 한결같이 못 놀아줘. 눈치 없는 것도 한결같아.'라면서 깔깔거렸어."

네... 저는 한결같습니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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