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걷는 길_35(2)

Words
520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Copedruzo to Santiago de compostela

산티아고에 입성하는 날 (중)

형체가 없는 두려움은 직접 마주하지 않으면 그것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그 크기도 모른 채 난 그 두려움에 먹히고 만다. 완전히 전부 다 먹혀서 내가 부서져 사라지기 전에 나는 나를 먹은 그것들을 마주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첫 발걸음을 이곳 까미노 산티아고에서 시작했다.

IMG_3430_c_22.jpg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별문제 없이 산티아고에 들어갈 것이라는 건 시작 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쩌면 아픈 내 몸에게 봐라 이정도는 문제없지 않느냐 라고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정이고 뭐고 아무것도 계획 하지 못한 채 가방 하나만 메고 떠나온 길….
그 흔한 지도도 없이 오롯이 노란 화살표만 보고 걸어온 길… 온전히 나를 던져버린 길.
그렇게 까미노에 던져진 내가 이 길을 이 여정들을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늘 그렇듯 어떤 사랑이든 사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온다.
아무런 기대 없이 가시가 된 텅 빈 나의 심장을 이 길에 던졌고, 내 심장은 이 길의 사랑을 그대로 빠르게 흡수하며, 나를 가장 본질적인 나로 한 달 넘게 살게 했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내 모습.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었던 아이였었지라고 느끼며, 모든 것을 온전히 내려놓고 오롯이 이 길만을 즐기며 하루하루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용서의 언덕에서 가졌던 물음과 생각들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에게 그냥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진실한 가슴으로 나에게 그리고 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수많은 순례자들과의 소통.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나에게 들려준 모든 이야기는 내가 겪으며 미치게 힘들고 아파하며 죽도록 고통스러워했던 것들이었거나, 내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 그리고 내가 현재 겪고 있는 것들 이었다.

미겔의 가슴을 난도질한 사랑과 배신, H 언니의 잃어버림과 고통, 절망, 두려움과 공포, 아리조나와 동부 어머니들을 통해서 본 나의 엄마, LA 어머니의 절망과 쓸쓸한 외로움, 쉬에르보 아버지의 가족 사랑과 소소한 가족의 꿈 그리고 쉬에르보의 꿈과 열정, 캐나다 순례자들의 사랑과 우정, 게이타노의 육체적 고통과 미래를 향한 꿈과 노력, 페트리시아의 가족의 그리움과 사랑, 독일인 순례자 마크의 설레임 가득한 사랑과 행복, 영국 순례자 존의 냉정과 열정 사이, 더글라스 아저씨의 도전과 사랑, 르단이의 그리움과 방황, 캐나다 아주머니의 시련 그리고 지독한 고독, 대구 할아버지의 육체적 아픔과의 싸움, 리에코의 처절한 상실감과 절절한 소망, 병원 알베르게….

그렇다 그들 모두의 사연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겪어왔고 앞으로 지나가야 하는 것들... 모두다. 전부다. 나와 서로 이야기하며 울고 웃은 많은 순례자들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나는 나를 보았고, 그들과 나누었던 위로와 감사와 행복의 마음은 어쩌면 나의 엄마에게, 나의 아빠에게, 내 가족에게,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함께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더더욱 그들이 행복하기를 더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까미노를 더욱 다이나믹하게 만들어준 중간에 같이 걸음을 걸은 일행들의 작은 사건들 그 속에서의 또 다른 배움들, 매일 매일 환상 같은 여명들, 끝없이 찬란한 자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00KM 거리... 그 속에서 발가벗은 나 자신과의 대화, 그렇게 나를 충분히 안아 줄 수 있었던 귀한 시간들…

내 심장이 흡수한 나의 산티아고.

이 여정을 통해 나는 나의 과거를 보았고…
나의 현재를 온전히 즐기고 행복했으며, 그 행복 속에서 나의 미래를 그렸다.
이 길에서 이렇게 온전히 행복할 수 있었던 나는 내 미래도 행복할 수 있다고 아니,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 날부터인가 내 가슴을 울렁이며 가득차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
현실의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으니까... 다시 많이 아플지도 몰라...
응. 그래 맞아, 그래도... 이제는 괜찮아...
.
.
.
저 멀리 혼자 걸어가는 K가 보인다.
“K야~ 같이가~~~"

나를 찾아 걷는 길_35(2)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