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걷는 길_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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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xe to Boente

오늘 새벽은 유난히도 안개가 짙다. 이렇게 심한 안개는 오늘이 처음이다.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며칠째 이어지는 30KM 강행군에 내 몸은 이미 내 몸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오늘도 가야 할 길이 멀기도 하고, 새벽에 걷는 것이 너무 좋아서 일찍부터 서두른다. 칠흑같이 어둡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 조금 늦게 출발할 수도 있으나, 조금 걷다 보면 어차피 해는 뜰 것이기에 K와 나는 이 어두운 새벽의 걸음을 즐기기로 하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 같은 시간에 알베르게를 나왔다. 무엇보다도, 이제 여명을 마주하며 걸을 날도 며칠 안 남았기에 최대한 소중히 남은 여명의 시간을 즐기고 싶어서다.

오로지 별빛과 달빛이 전부인 세상 그곳에 지금 내가 서 있는 거 같았다. 해가 뜨기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눈을 뜨고 있지만 마치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깊게 잠을 자는 것 같은 나무가 내 발걸음 소리에 깰까 봐 괜스레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걸어간다. 내가 지금 저 나무들을 깨우는 건 아니겠지? 더 자고 싶은데 일찍 걸어가는 순례자들 때문에 자던 나무들이 잠에서 깰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스며든다.
주의가 어두워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따라 하늘의 별은 유난히 더 많아 보인다.
K야 잠시 헤드랜턴 끄고 하늘 좀 봐봐. 별이 너무 예뻐...
어? ...
아! 알았어.

별들이 나에게 오는 걸까? 내가 별에 가는 걸까?, 내가 별을 보듯 별도 나를 볼까? 오늘은 달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한참을 그렇게 하늘을 보다 목 디스크가 올 것 같을 때쯤 앞을 보았다. 여전히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만큼 어둡다. 그래도 천천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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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혼자 걸어서 그런가? 아니면 산티아고에 가까워져서 그런가? K가 달라졌다.
말 그대로 “우리 K가 달라졌어요”.
나는 너의 짜증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는데 K는 더 이상 짜증을 안 낸다. 오~~
짜증을 안내니까 걷는 길이 더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된 걸까? 나는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어떤 내면의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모르나 나는 그저 그 작은 변화에 감사할 뿐이다.

K는 언제나 “길에서 만난 인연은 길에서 끝이다.” 뭐 이런 말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언젠가는 인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강한 K의 생각을 나는 그냥 듣는다.
그리고 또 K의 생각이 어느 부분 맞는 다고도 본다. 길 에서든 어디에서든 생겨나는 수많은 그 인연들 속에서 소중함이 이어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찾고 하는 것도 복이고, 노력이고, 또 감사이지 않을까...
소중한 귀한 인연들을 한눈에 알아보는 혜안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를 못하니, 나는 그저 내가 나에게 오고 가는 소중한 인연들을 나의 부주의로 그냥 지나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참 걷다가 힘이 들면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아니 정확히 K가 불렀다. 한때 가수가 꿈이었던 K는 노래를 아주 잘한다. 최신곡은 물론이고 옛날 가요까지. 나의 피드백까지 챙기며 열심히 부르다.
.
지금 부른건 느낌이...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은데, 카라멜 프라푸치노에 휘핑크림까지 팍!! 얹어 마시는 거 같어...
하하 느끼하구나!
음... 느끼한 듯, 약간 오버인 듯 그러면서 또 달달한 듯...
알았어 하하.

잠시 후 K가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조용히 다시 노래를 부른다.

소름...

(이문세-옛사랑)

나는 이제 어쩌면 이 노래를 들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자연스런 시간의 흐름으로 사랑하는 나무에서 떨어져야만 했을 낙엽을 평화로움과 따뜻함으로 밟으며 한발 한발 걸어갔던 까미노의 어느 가을 숲길이 생각날 거 같다.

참 신기하다고 여겼다. H언니와 걷던 숲길에서도 그렇고...
마치 이 길에서는 그 어떤 것들도 다 합쳐지고 걸러져서 “행복” 이라는 말로 나오게 하는 힘이 있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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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ide 가는 길에 혼자 열심히 걸어가는 L을 만났다.
Melide에서 문어가 유명하다고 해서 점심으로 문어를 먹고 가려고 뿔뽀를 시켰다. 처음 먹어보는 뿔뽀. 문어가 정말 야들야들. 도대체 문어를 어떻게 삶으면 이렇게 부드러운걸까? 와인과 문어를 같이 주문하면 값이 더 싸서 와인까지 시켰는데 왠지 막걸리를 마셔야 할 것 같은 잔. 뿔뽀와 와인이 우리나라 파전과 막걸리 궁합인가?

다들 맛있게 먹고 와인에 취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절대 취하지 않았었다고 하고, K와 L은 내가 취했었다며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흉내 내며 한참을 놀리며 웃는다.
아...아마도 며칠째 이어지는 30KM 강행군에 피곤한 내 몸이 취했던 것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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