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의 인문학 강의[006]: 모든 것을 기억했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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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들어가는 말 : 모든 것을 기억했던 남자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가운데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있습니다. 푸네스는 사고를 겪은 뒤 사진기 같은 기억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본 것 모두를 그대로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세 유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요? 다음은 그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라틴어를 습득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곤 했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며, 또한 일반화를 시키고 개념화를 시키는 것이다. 푸네스의 풍요로운 세계에는 단지 거의 즉각적으로 인지되는 세부적인 것들밖에 없었다.[1]

이런 기억력을 가진 푸네스는 스스로 ‘쓰레기 하치장’과 같은 기억력을 가졌다고 말했다.[2]

이 인용문에서 “사고를 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라는 말이 좀 혼란스러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 보면 이해하기가 좀 쉬울 겁니다.

남자들만 모아놓고 보면 다 달라 보입니다. 차이가 보이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거기에 여자가 끼어들면 갑자기 남자들은 다 비슷해 보입니다. 한 여자만 달라 보입니다. 모두가 달라 보이던 남자들이 ‘여자’와 구별됩니다. 여기에 개나 소, 말을 더해보면 다시 남자와 여자는 비슷해 보이고 개나 소, 말이 비슷해 보입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이 가능한 것은 ‘사소한’ 차이를 잊고(보지 않고, 또는 무시하고) ‘중요한’ 유사성을 가려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입니다. 앞에서 소개했던 유령들 덕분이지요. ‘사소하다’는 것과 ‘중요하다’는 판단은 보고 싶은 것을 볼 줄 알고,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줄 알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유령이 사라진(또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기억의 병 가운데 하나가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위 인용문은 ‘지어낸 이야기fiction’이니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소설 속의 푸네스와 거의 비슷한 사람이 실존했습니다. 러시아의 ‘기억술사mnemonist’였던 솔로몬 셰레솁스키Solomon V. Shereshevskii(1886~1958)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위대한 루리야’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가 쓴 「기억의 병리학에 대한 매우 문학적인 임상보고서」가 작은 책[3]으로 출간되면서 알려졌습니다.

모든 것을 빠짐없이 본 그대로를 기억하는 이 남자는 젊은 시절 그 놀라운 능력으로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지만 결국 그 놀라운 기억의 희생자가 됩니다.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자 머릿속에는 ‘너무나 많은 기억의 쓰레기더미’가 쌓여 정리되지 못했고, 마침내 5분 전에 일어난 일과 5년 전에 일어난 사실을 구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지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지 못하는 이 기억술사는 인간 언어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추상성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언어학을 다룰 때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인간의 언어는 사실이나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이 글이 책으로 나온 뒤였다면, 먼저 언어학 부분을 읽고 돌아와도 좋다고 말씀드렸겠군요). 그렇지만 인간은 실제와 별 관계 없이 만들어진 ‘온통 추상적인 언어’로 생각합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유령’에서 예를 들었듯이 인간은 언어를 통해 해석한 세상을 봅니다. 같은 색깔이라도 언어가 다르면 다르게 보인다는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이 남자는 언어를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데 심각한 곤란을 겪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용기 위에 이산화탄소가 있는 경우, 압력이 높아지면 이산화탄소는 물에 더 빨리 녹는다.”
보통사람들은 쉽게 이 말을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기억술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식이었어요.
“용기 위에 이산화탄소가 있어, 좋아, 그런데 ‘압력이 높아지면’이라고? 그렇다면 압력이 이산화탄소보다 위에 있다는 말이고 더 무거워진다는 말이겠군, 그런데 점점 위로 올라가면(높아지면) 이산화탄소가 물에 더 빨리 녹는다고?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하단 말이야?”(책 내용을 요약했음)
앞에서 예를 든 없음無과 같은 개념도 이 기억술사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졌기 때문에 없음無을 이해하려면 없음이 있어야 했지요. 그러나 없음無은 어디에도 없어서 ‘사진 같은 기억’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숫자를 기억하는 과정에 이르면 우습다 못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굳이 기억할 것도 없는 것을 그는 기억하기 위해 애써야 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였지요.[4]



이미지 9


사진 같은 기억력이 아니라 상황을 해석하는(아는 만큼 보는 유령을 가진) 보통사람이라면 위 그림(이미지 9)의 가로세로 숫자들이 그저 순서대로일 뿐이라는 것을 금방 압니다. 그러나 이 기억술사는 이 숫자판을 ‘사진 같은 기억술’을 사용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야 했지요. 나중에 그는 이 숫자판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는 ‘알파벳이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었다고 해도 그 의미를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번 이야기도 이제 마무리해야 하겠군요. 이 장에서 설명한 인간의 머릿속에 사는 세 유령은 절대로 사실 그대로를 보지 못하게 만들지만 매우 효율적으로(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고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그 정보를 쓸모 있는 데이터가 되게 만드는)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다만 그 유령이 가진 한계가 분명하고 그 한계를 이해함으로써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짚어두자는 것이지요. 인문학 공부의 핵심은 지식이나 원리 같은 것을 더 많이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좀더 잘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인문학humanitas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다고 알려진 키케로Cicero가 한 말을 인용하며 제 이야기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문학이란 원리나 원칙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학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단련되어야 더욱더 인간다워진다.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되며, 품위 있는 사회적 태도를 가질 뿐 아니라 정치적인 역할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은 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보다 다수가 믿는 것을 믿는 것이 쉬운 일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정관념을 의심하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인생은 불확실하다. 그러니 자기를 기만하는 낙천주의보다 튼튼한 논리에 바탕한 비관주의가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인간은 스스로를 단련시켜 신을 닮을 수 있다. 완벽한 자연을 배우고 닮으려 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 그 학문이 바로 인문학인 것이다.”[5]


[1], [2]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픽션들』 「기억의 천재 푸네스」, 민음사, 1994.
[3] 국내에서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아,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2007년)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입니다. 원래 제목은 『기억술사의 정신 The Mind of a Mnemonist: A Little Book About a Vast Memory』이고요. 저자는 한국에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지과학의 선구자로 ‘위대한 루리야’라고도 불리는 러시아 신경심리학자입니다.
[4] 위의 책 85쪽.
[5] 출처 메모 사라짐. 어떻게든 찾아보겠습니다. ㅠ..ㅠ


(C) 강창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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