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사라지지 않는다더니
바퀴벌레와 전쟁 중이다.
홍콩이 습해서 그런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나는 새벽에 몰래 나와 바퀴들이 내가 자러 들어간 사이를 틈타
나와 활동할 때 그들을 순식간에 박멸해 버린다.
한번은 바퀴벌레가 있길래 빛의 속도로 박멸에 들어갔는데
나한테 날라오길래 (ㅜㅜ) 진짜 허걱했다.
(천사의 날개도 아니고 바퀴의 날개는 정말 질색이다..ㅠㅠ)
날아오는 바퀴를 향해 두려운 마음을 안고(나도 여자기에 날아오는 바퀴를
없애기란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ㅜㅜ)결국 바퀴를 저 세상으로 보냈다..
그런데 바퀴를 없애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바퀴를 없애는 일이 징그럽게도 싫으면서
왜 바퀴를 보자마자 행동에 들어가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싫으면 망설일 수도 있을텐데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보는 순간 바로 행동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내가 두렵지 않느냐,
그건 아니다. 바퀴가 징그럽고 죽이는 일이 너무 싫다.
그렇지만 난 발견하자마자 행동에 들어간다.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이유는 단 하나,
바퀴가 살아서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일이 더 싫기 때문이다.
당장 죽이는 일이 싫지만 놓쳐서 집 어딘가로 숨어버리는 건 더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일도 있고,
하고 싶은데 결국 용기가 안 나 안 하게 되는 일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탓한다.
"정말 하고 싶은데 의지가 부족해.."
"정말 해야 하는데 두려워.."
그런데 정말 해야만 하는 일은 (하고 싶은 일은)
아무리 두려워도 할 수 밖에, 저절로 하게 되는 것 같다.
두렵지만 그것을 안 하게 되었을 때의 결과가 더 두렵기 때문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우리의 의지를 탓하지 말고
우리의 몸에 맡겨 봤으면 좋겠다.
그것을 하지 못 하고 내가 삶을 마감하는 것이 더 두렵다면
우리는 그것을 할 용기가 부족하더라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행하지 못 하게 된다면
그것 역시 못난 우리를 탓할 게 아니라
그것은 사실 나의 진정한 바람이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저 내가 바란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암튼,
새벽에 자주 일어나 두려움을 무릅쓴 대가로
징그러운 바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처음엔 내가 그들을 두려워했으나,
이젠 그들이 나를 두려워한다.
두려움을 무릅쓴 대가로
나는 강자가 되었다.
니체는
"초인(超人)이란 고난을 견디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난을 사랑하고 고난에게 얼마든지 다시 찾아오기를 촉구하는 사람"
이라고 정의내렸는데,
나는 초인이 된 것만 같다.
바퀴야,
얼마든지 다시 찾아오렴.
나는 더 강해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