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였던가, 모 인터넷 설치를 전화로 권유(강요)하는 알바를 했었다.
며칠 하다 못 견디고 관뒀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나의 전화를 받는 사람들의 차가운 태도.
그도 그럴 것이 무작위로 주어지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바쁘다며 끊고 싶어하는 그들에게 “고갱님~^^”하며 계속 거머리처럼 그들의 설치를 권유하며 그들의 시간을 뺏었으니 이해도 간다.
욕을 하며 끊는 사람도 있었고 끊고 싶은데 끊질 못해 안절부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친구에게 재미삼아 내 목소리를 조금 바꾸어 전화했는데 그녀는 안절부절 내 전화를 매정하게 끊지 못하다가 나인것을 알고 허망해했다.. ㅎㅎ
어찌됐건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러한 광고 전화가 와도 매정하게 끊지는 못하지만(내가 매정한 그들의 태도에 상처를 받은적이 있기에)왠만하면 친절한 태도로 거절을 하려고 하나 매정하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타겟으로 삼고 날 보내주지 않았다..
갑자기 쓰고 싶은 글 내용이 생각나 열심히 몰입해 쓰고 있는데 통신사에서 전화가 걸려와 내가 놓친 혜택이 있다며 아직 혜택을 보지 못한 나를 위해서라며 나에게 이렇게 하면 더 좋을거라며 나를 솔깃하게 한다.
한참을 듣고 시간은 한참 지나버리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딱히 나에게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아까 쓰려던 그 글의 영감을 그 덕분에 잊어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그를 어떻게 거절할까 마음의 부담을 가지게 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갖는 황금시간에 바로 이런 광고 전화를 받고(그들은 친절하기에 매정하게 끊기도 애매하다..) 쓰려던 글을 못 쓰고 놓친 영감과 시간을 아까워하며 다시는 이렇게 생판 모르는 남에게 내 일을 방해받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그리고선 마트에 가서 아이 먹거리를 사고 서둘러 집에 가려던 순간 또 만면에 웃음을 띤 사람이 나를 잡는다. 아이 발달 검사를 해보란다. 아이 책은 하루에 몇권을 읽어주냐 물어보고 나의 인상이 좋다고 한다.
(이쁜 것도 아니고 좋은 인상이란 말은 달갑지 않다. 인상이 좋으니 자기네 책을 사란 말로밖에 들리질 않는다)
웃으며 집에 가서 팜플렛 살펴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집에 가는 발길을 재촉했으나 나를 보내주지 않는다. 어디 사시냐 묻고 왜 이렇게 부담을 가지시냐며 가려는 나를 곱게 보내주지 않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황금같은 내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다른이에게 빼앗긴 것을 보고 나의 태도에 대해 돌이켜보게 된다.
나는 예전에 차가운 고갱님(?)들의 태도에 상처를 받아 예전의 나와 같은 일을 하는 그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나름 선한 의도로 좋게 거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태도는 오히려 내가 그들의 영업실적에 도움을 주리라는 희망을 주었고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업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뺏고 나의 황금같은 시간도 뺏겼다.
그리고 마지막엔 영업을 성사시키지 못한 그들도 기분이 나쁘고 황금같은 내 개인시간을 뺏긴 내 기분도 나빠진다.
나는 좋은 게 좋다고 여겼다.
그래서 무조건 웃는 얼굴로 거절을 하더라도 매몰차게 하는 것은 상대방을 상처주는 것이라고 여겼으나 잘 생각해보면 나의 이러한 어정쩡한 태도가 그들에게 희망을 갖게 한 것이다. 내가 그들의 의도에 따를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의도에 따르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고 단지 내 시간을 알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저 나쁜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았거나 단호한 거절을 할만한 용기가 없었을 수도 있다.
결국에는 서로 다 목적을 이루지 못 했고 그럼으로써 서로 기분만 상했다.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어차피 그의 의도에 따라주지 않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단호하게 나는 당신의 의도에 따를 생각이 없습니다. 라고 처음부터 암시를 주는게 서로에게 결과적으로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세상살이가, 인간관계가 참 쉽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는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고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나는 그들의 의도에 따라주지 않아 그들의 시간을 뺏고 작은 상처를 주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면서도 아직도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딱히 좋은 사람이 되지도 못했다.
나의 마음을 조금 더 여실히 잘 들여다봐야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차피 처음부터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괜히 상대방에게 어설픈 희망을 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의 어정쩡한 태도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인간관계가 아주 좁은 사람이고 적으면 적을수록 그 관계가 소중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고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서로 피치 못하게 해를 끼친다.
내가 어느 회사에 들어가서 나로 인해 피해본 상사들이 있었고 나는 피해주는 그 느낌이 싫어 오래지 않아 제발로 그 곳을 나왔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도움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세상 살다보면 그렇게 안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쩌면 내 능력이 안되는 곳으로 갔기에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저 자격지심일수도 있다)
나의 마음을 잘 살펴보아 내가 어차피 상대방의 의도에 따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면 괜시리 예스맨 행세를 하며 서로의 시간을 뺏지 말고 서로의 갈길을 제각기 잘 찾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과연 내가 그들을 위해 예스맨이 되었는지 아니면 아직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마음 깊숙이 남아있는건지는 모르겠다.
욕 먹는 것이 그토록 두려운 것일까..
내가 사실 그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말이다.
가만히 걷고 있는 내 인생의 산책길에 여기 저기서 끼여드는 원치 않는 사람들.. 어쩌면 그들을 그대로 끼여들게 뒀던 것도 내 자신의 태도가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용납했던 것 같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지만 원치 않는 일이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커지지 않도록 나의 태도를 정하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리고 욕 먹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욕 안 먹으려다가 결국에는 욕을 먹었다. 이래도 욕 먹고 저래도 욕 먹으니 그냥 자신의 마음을 따르고 욕 먹는게 차라리 낫겠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쏜살같이 빨리 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아까운 시간이다.
자신의 태도를 잘 결정하여 남에게 더이상 좌지우지 되지 않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게 결국은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