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일억을 준다면 이 일을 하겠습니까?

megaspor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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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하여 행동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나는 현재를 충분히 즐기자 라고 마음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고 있거나 미래에 있을 것 같은 일을 예상하곤 한다.

나는 얼마전 둘째 아기를 낳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그 행복한 순간에도 사실은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 하고 또 나도 모르게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상념에 빠져 현재를 종종 놓치곤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순간에도 서로 마음을 나누려 하기 보다는 내가 딱히 관심도 없는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대고 쳐다보며 그 순간을 또 흘려보낸다.

하지만 그래도 종종 명상을 한 덕분인지 내가 이 순간에 집중하지 않고 혼자 어딘가를 떠돌아다닌다는 것을 나는 느끼게 되고 다시금 그 순간에 내가 놓치고 있는 행복을 다시금 잡으려 한다.

그런데 이런 가정을 해보았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너에게 일억을 줄테니 이 일을 해봐. 라고 했다거나 아니면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이미 일억을 지불했다고 가정을 해보면 나는 그 일에 무진장 집중할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에 이미 일억을 지불한 상태고 그렇다면 나는 그 일억이 아깝지 않도록 그 순간에 나의 온갖 신경세포를 동원하여 모든 것을 최대한 느끼려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우리는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자신을 더 소중하게 대해야 하며 그 방법으로 잘 먹어야 하며 질 좋은 수면을 취해야 하며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먹는 것도 시간이 없고 귀찮다는 핑계로 대충 때워 먹으며, 질 좋은 수면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밤 늦도록 자지 않고 관심도 없는 인터넷 세상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단 오분 십분의 시간도 귀찮을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 아니라 다 알고 있지만 무의식에 배어든 우리의 오랜 습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데에 있다.

의식적으로는 이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우리의 행동은 그 반대의 것을 취한다.

그리고는 의식과 무의식이 빚어낸 행동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겠다고 진심으로 마음을 먹었고 변화하고 싶다면 한번 가정을 해보자.

누가 나한테 “일억을 줄테니 이 일을 해볼래”
라고 제안을 했다고 말이다.

나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나 귀찮다.

그럴 땐 혼자 가정을 해본다.

누군가 나에게 일억을 주었다.
나에게 운동을 하라고 말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할 것인가?

아니다.
나는 분명 지금까지 게을렀던 나를 당장 탈바꿈하여 그 돈을 받기 위해 버선발로 뛰어나가 당장 운동을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정말 내가 변화하고 싶은 나의 모습은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럴만한 큰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 했을 뿐이다.

우리는 어떠한 큰 계기가 있으면 우리가 원하는 꿈에 그리는 우리의 이상적인 내가 될 수 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왠지는 모르지만 하기 싫은 것이다.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하기 싫기 때문에 변화하지 못 하는 것이다.

살면 살수록 변화하고 싶은 열망은 더 커져만 간다.

나의 삶은 점점 짧아지고 있기에.
나의 젊음도 아주 오래 남진 않았기에.

이제는 변하고 싶은 열망이 정말로 크다면
사람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실망이나 좌절, 분노나 허무함이 몰려와도 최소한 변화하고자 했던 나 자신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도는 그 자체로 용기니까.

극과 극은 서로 맞닿는다고 했다.

삶을 피하기만 했던 나는 이제는 여기 부딪히고 저기 부딪히더라도 삶을 직면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아픈 것도 내가 더 단단해지는 영광의 상처로 생각하기로 했다.

최소한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내가 바라는 삶을 못 살지는 말자.

내가 원하는 내가 죽기 전까지도 못 될지 몰라도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고뇌했던 과정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변할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면

우리에게 복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