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들을 얼마나 알기에 미워했고 그들을 얼마나 알기에 좋아했을까.
나는 내 자신을 얼마나 알기에 나를 미워했고 또 의기양양해 했을까.
아침햇살이 비치면 의욕이 충만하고 자신감이 한없이 차오르다가 어둠이 깔리면 언제 그랬냐는듯 기운을 잃어버리는 것이 사람이다.
같은 일도 어떨 땐 긍정적으로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고 어떨 땐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라는 식으로 스스로도 깜짝 놀랄 것처럼 돌변하기도 한다.
자신에게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고 선과 악, 최선의 나와 최악의 나 그 모두가 함께 들어있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너는 잘난 사람 혹은 나는 못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것 자체가 여러 모습을 갖추고 있는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고 오만이다.
상처를 받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기대. 나 자신에 대한 기대.
나를 사랑해줄 줄 알았던 사람이 나를 차갑게 대하면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이 정도는 거뜬히 해낼 줄 알았던 자신이 그것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갈 때 우리는 상처를 받는다.
‘저 사람은 이럴거야. 나는 이래야만 해.’ 라는 기대.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주입시켜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몇십년을 함께 해온 내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난 저 사람을 알아.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참 착한 사람이지. 참 이상한 사람이야. ’라고 단정짓고 평가하고 내가 내린 평가에 내가 상처를 받았을까.
똥 누러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한없이 변덕스러운 존재다.
변덕스러운 만큼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찬 존재다.
그러니 나는 영원히 이럴 것이라고 절망할 필요도, 너는 영원히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희망에 가득찰 필요도 없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절망의 모습을 한 희망이다.
‘이 사람 이런 사람이네. ’하고 섣불리 평가 내려 괜히 혼자 상처 받지 말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섣불리 단정 지어 변화를 가로막지 말자.
우리는 그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존재다.
선과 악.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그 모든 것.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나의 아까운 에너지를 쏟지 말고 나 자신을 내가 만든 좁은 틀에 가둬 자꾸 제약하고 억누르지 말자.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더 크고 더 부질없는 존재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직은 이 세상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땅을 밟고 있다는 것. 바람과 햇살을 느끼고 있다는 것.
인생에서 많은 일이 내 뜻대로 되진 않지만 안 되는 와중에도 이루기 위해 아둥바둥 해봤다는 것. 부질 없는 것 알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진실한 사랑을 찾기 위해 애썼다는 것.
그것에 의미가 있을까.
부질 없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향해 한걸음 내딛었다는 것.
두려움엔 참 실체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비록 초라한 시작일지라도 한걸음을 내딛었으면 한다. 거창하진 않더라도 우리는 그 초라한 시작에서 우리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부질 없다고, 허망하다고 모든 걸 손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질 없고 허망한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하는 이상향을 향해 하루하루 걸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자신을 찾아온 알렉산더 대왕에게 했다던 말이 생각나는 완연한 봄이다.
“햇빛 가린다. 비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