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megaspore(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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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살았는지 가끔은 내 자신도 궁금해.

왜 이 나이 먹도록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는지.
왜 열심히 살지 않았는지.

우선은, 뭘 시도해야 하는지 몰랐어.
남들 하는거는 나름 하고 살았지.

학원 보내주면 보내주는대로 가고 야자 하라고 하면 하고
왠지는 모르지만 알려진 대학에 가면 좋다고 해서
도서관 다니고 과외하고 했지.

엄마가 하루종일 서서 일한 돈으로 유학도 다녀왔고
전공을 써먹어야 한다는, 안 그러면 지금까지의 내 모든 경험이 뻘짓이 되는 것 같아
무조건 전공 써먹을 수 있는 작은 회사에 들어갔지.

그것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오고 결혼을 했어.
하라고 하니까. 다들 그 나이 되면 하니까.
아이도 낳았지. 결혼하면 낳아야 되는거잖아. 그게 법칙이잖아.

이 모든 것에 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어.
그때는 그게 노력인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냥 하는 척만 했던거야.
그래야만 되는건줄 알았지.

무엇을 위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건지
의문도 갖지 않고 삼십년을 살았어.
정해진 법칙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남들처럼 수행하면
그게 잘 사는건줄 알았어. 그게 인생인줄 알았지.

열정이라는건 책에서, 혹은 꿈을 가져야 한다며
열을 내며 말하는 강연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였고
도대체 열정이라는게 뭔지, 어떻게 그렇게 열정을 가질 수 있는건지 신기하기만 했지.

그런 사람들이 이상한건줄 알았어.
평범하게 사는게 진리인데 꼭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성공하더라고.

성공이 뭐야? 열정은 또 뭐고?

불행 중 다행인건 나에게도 방황이란게 찾아온거야.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게 참 중요한가봐.

혼자 멍 하니, 남들이 보면 시간 낭비라 보일만한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문득, 통찰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불현듯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이 모든게 참 이상하다.
나 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지? 나는 또 왜 지금 이렇게 사는거지?
무엇을 위해서? 세끼 밥 먹으려고 사는건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기 전까지 이 모든 시간을
난 왜 이런 것들을 하며 살아가는거지? 뭐지? 진짜.. 삶이란게.. 뭐지?

안 그래도 남들따라 하는 척만 해온 인생이니
딱히 성과도 없고 부지런할만한 어떤 동기도 찾을 수 없는
게으른 나였는데 방황이 시작되니 더 심해졌지.

왜 아침에 눈을 떠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내가 밥을 먹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거야.
도대체 이 모든 것을 왜 하는거냐고. 나는 뭐 때문에 사는거냐고.

아무리 거센 폭풍도 가라앉듯이 방황도 알아서 가라앉대.
그러고 나선 매일 보던 세상이, 매일 보던 사람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참 신기하다. 내가 처한 오늘의 상황이 참 신기하다. 감사하다..

방황의 끝에는 평온이 찾아왔어. 물론 지금도 하루에도 몇번씩 방황하지만
그 후엔 내면에 어떤 깨달음, 교훈 같은 것이 찾아오더라구. 그러니 이제 방황을 덜 두려워하게 됐지.

나는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아왔을까. 그 오랜 세월을 말이야.

내가 어쩌면 내 뜻대로, 내가 선택해서, 내가 스스로 우러나와서
자발적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더라고.

사람은 자유가 없으면 죽은 것과 다름 없이 살게 되나봐.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책임이 싫어서 스스로 인생을 선택해야 하는 자유를 포기하면
몸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 없이 살게 되는거야.

근데 이게 이제 머릿속으론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겠는데
말은 누가 못해, 실천이 문제지. 근데 항상 입만 나불나불. 머릿속만 복잡.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더는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무서운게 참 많아. 사람들의 시선, 비웃음. 무능력한 나를 확인하게 되는 일상들.
나는 사람들의 신뢰, 따뜻함 이런 것들이 필요한데 내가 가야할 길에 꼭 그런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그런 것들은 소중하니 흔하지도 않지.

지금까지 누군가 나에게 보여줬던 스치듯 지나갔던 따뜻함 조차도
내 기억 속에 차곡차곡 저장해두는거야.
그리고 내 자신이 싫어질 때마다 야금야금 그 기억을 꺼내보는거야.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고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던 그 누군가를 떠올려 봐.

아참, 제일 무서운게 하나 남았네.

이 모든 것이 그저 내 머릿속에서만 떠도는 생각으로만 남는거.

결국은 이 모든 것이 그저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는걸 인생 막바지에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무서운게 있을까.

그러니 더 무서워지지 않으려면 조금 무서운건 조금은 견뎌야겠지.
나중에 롤러코스터의 무서움처럼 그 무서움조차 즐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말이야.

인생이 공상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결국은 실천 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