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억지로 웃지 않는다.
나는 정말 잘 웃는 사람이었다.
(한편으로 말하면 정말 우울한 사람이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코미디언들 중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너무나 힘들기에 반대로 너무나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정말로 웃고 싶건 혹은 웃고 싶지 않건 타인이 있을 때는 무조건 웃음을 보이려 노력했다. 그때는 내가 착해서 그런 줄 알았다.
사람들이 나한테 어떻게 대하든 나는 그 사람들처럼 그런 예의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하며 나는 무언가 다른 종류의 사람인 마냥 나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포용하는 척 언제나 고결한(?)미소를 유지하려 애썼다.
김창옥 교수의 포프리쇼 강연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톨게이트였나 암튼 어느 곳에서 포프리쇼 사장님과 같이 있는데 그 톨게이트 직원이 엄청 불친절한 태도로 거스름돈을 거슬러 주는 것이었다.
김창옥 교수는 사실은 기분이 나빴지만 평소의 젠틀한 태도에 미소를 유지하려 애쓰며 “감사합니다~^^” 했더니 나중에 옆에 있던 사장님이 하는 말:
“감사하지 않잖아요.”
김창옥 교수는 지금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냥 딱히 웃지도 않고 떨떠름한 자신의 기분을 어느 정도 드러내보이며 “네. 주세요~”했을 것 같다고 한다.
나는 김창옥 교수의 말에 너무나 큰 동감을 했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감사하지도 않은데 감사하다고 하고 죄송하지도 않은데 죄송하다고 말해왔는가.
왜 나는 웃고 싶지 않은데 이해가 되지 않는데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모든 것을 이해하는 척 웃어 왔는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사람들을 믿지 못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앞의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았기에 내 진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사람에게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나는 그 사람에게 버림을 받을까봐 혹은 피해를 당할까봐(어릴 적 그래왔듯이..)나는 언제나 웃는 가면으로 나를 보호해왔던 것이다.
사람에겐 거울 뉴런이 있어 웃는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웃게 되고 찡그린 사람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나를 잘 알지 못 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무조건 환하게 웃는 게 필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에 대해 경계심을 풀고 우리는 서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많은 것을 알아가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과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도 계속 그 가면을 벗을 용기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착한 가면을 벗으면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도(상대방은 무의식중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냅두면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나만 이해하면 되지..’하고 자신을 억지로 다독거리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다.(눈은 그대론데 입만)
나도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나 나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져만 가고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만 가고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것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마음이 안정된 사람들은 나처럼 내내 웃는 가면을 쓰지 않고 내내 오버하지도 않는 평안한 마음과 표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억지로 계속 웃고 있지도 않았으며 또 너무나 사람들에게 다 맞추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적당’했다.
주위에서 보면 그 사람들보다 계속 웃고 있는 내가 정말 행복하고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비춰졌겠지만 역시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가라앉아 보이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인간관계를 맺으며 많은 시행착오와 내면의 괴로움을 겪으며 나는 이제 억지로 웃지는 않기로 했다. 내 내면에서 정말 웃고 싶을 때만 웃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할 때만 감사하다고 말 하고,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 때만 죄송하다고 말 하기로 했다.
내가 그러기로 한 것은 나는 이제 예전보다 사람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람을 신뢰하지 못 하고 눈치만 보는 사람으로 자란 나는 커서 남편이 보내주는 진실한 마음을, 그 순수한 사랑을 감히(?) 받은 후 부터 나는 오랫동안 사람에게 닫아왔던 마음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열게 되었고 이제는 나는 안다.
나를 상처주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이 숨겨져 있음을.
그들도 나처럼 세상에 상처를 받아 자신의 약하디 약한 순수한 마음을 감춰 온 것임을.
그리고 웃는 가면을 언젠가는 벗어야만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와 정말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세상에서 나를 그냥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가면을 써서 나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말 나와 평생을 함께 할 나와 마음의 교류를 하고 나의 사람이 되어 줄 사람에게는 나의 진심을 내보여야 한다. 그 진심이 설령 누구나가 좋아하지 않는 그러한 슬픔, 괴로움,분노 등일지라도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내가 사랑하는 그에게 솔직히 내보여야 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가 그의 가면을 드디어 나에게 벗으려 할 때 우리는 그때 그가 드디어 나에게 마음을 여는구나 하고 기뻐하고 원래 모습의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드디어 우리에게 마음을 열려고 할 때 안타깝게도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왜냐면 나는 지금까지 그의 가면이 그의 진짜 모습인줄 알았기에 ‘지금까지 나를 속인거야’ 하는 배신감이 들며 그를 배척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웃을 때보다
그가 나를 보며 화를 낼 때,
나를 보며 쓸쓸한 얼굴을 내비칠 때
지친 얼굴을 나에게 그대로 내보일 때.
그때가 진짜 그의 모습일 경우가 많다.
어느 책에서 이러한 구절을 보았다.
“기쁨은 사람을 외롭게 하고
슬픔은 사람을 가깝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진심을 내보일 때,
설사 그 진심이 예쁜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때서야 그와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
그 과정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언제나,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하는 법이다.
그리고,
용기 있는 내가 내 사람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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