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 liberalism. 11화] 앤디워홀의 명언으로 본 사기꾼과 사람들

marginshort(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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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미룬지가 벌써 열흘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번 회차부터는 좀 공유해야할 곳이 있어 앞으로 economic liberalism 은 경어체를 생략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근 1주간 주식계엔 큰 파장이 일었다. 이른바, '기부청년' '청년버핏'이라는 별명을 가진 P모 청년에게 주식계좌를 공개하라는 저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그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자면 이렇다. P씨는 13년 샛별처럼 나타나 1500만원 가량의 씨드머니를 기반으로 400억을 벌었다며 이를 다시금 평생 기부하며 살도록 하겠다는 인터뷰 기사로 신화를 써나갔다.

그리곤 자신의 자수성가한 과거 이야기부터 홍콩의 자산운용사에서 엄청난 금액의 투자금을 운용하고 있다는, 그야말로 주식계의 신화같은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주식판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는 점차 유명세를 얻고 지지층을 확보하며 책을 출판하고 유지들과 만나고, 강연회를 열고, 각종 행사의 연사로 참여한다.


이미 금융권에 발들인 사람들이나 트레이딩을 오래 접한 사람들은 두번째 문단에서 다들 눈치채고 불편감을 느꼈을 것이다.

'1500만원으로 몇년만에 400억을 벌었다.' '레버리지를 이용한 투자로 가능한 일이었다.' 어디서 많이 보았던 말들 아닌가?

우린 복재성이나 이희진같은 사기꾼들의 행보와 그 결말을 보며 저런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저 둘만으로도 피해자가 대체 몇명이며 피해액은 대체 몇십, 몇백억인가?

당장 유사투자자문으로 사기행위가 있진 않았기에 금융당국에선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사실, 이희진의 경우에도 금융당국은 상당히 늦은 발걸음을 했지만 어쨌든 이 경우엔 상당히 공적인 자리에까지 얼굴을 드러냈고 공적인 인사들을 만났으나 별 터치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저 행위들은 사기행위나 다름이 없다. 저 행동으로 이미 P씨는 수입을 올렸고, 유명세를 얻었다. 결과론적으로 주식사기가 없었을 뿐, 만약 이희진처럼 저 유명세를 투자자문으로 휘둘렀다면 그땐 누가 그 피해를 또 책임질 수 있을까. 다행히 현재는 저격수를 만나 이야기를 마치고 언론사를 통해 사죄와 해명의 말을 올렸다.


문제는 저런 사람들이 아니다. 이 사회에 저런 사람들은 수도없이 재생산되고 사기꾼은 인류역사상 존재하지 않던 적이 없다. 태초부터 남을 속이는 일은 인간에게 그리 어렵거나 희귀한 행동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저기에 속는 사람들, 적당히 봐주는 대중들, 그리고 멍청한 언론들이다.

일단 언론사의 문제는 굉장히 심각하다. 사실상 이희진도 그렇고 P씨도 그렇고 방송에 수도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TV에 나왔다하면 신뢰감을 갖는다. 사기꾼이더라도 TV에 일단 나오고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과 말도 섞고 대우받고 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레 신뢰가 생기고 뭔가 알수없는 친밀감이 쌓이는 것이다.

P씨의 경우엔 이희진보다도 더 심했다. KBS, YTN, 연합뉴스TV, 각종 주식방송, 케이블 등에 출연해 강연을 했다. 저 앞의 세 방송국을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심지어 KBS는 공영방송이다. 저곳에 청년버핏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아주 멀쩡하게 나와 거짓말을 전파에 태운것이다. 그야말로 대국민 기망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멘토들이 방송국에 나와 거짓말치고, 연예인들이 본인의 학창시절에 허언을 좀 붙이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검증을 꼭 할 필요가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돈이 오가는 금융에 관한 거짓말은 그야말로 사회악이고 비난받아야하는 일이거니와 철저하진 못하더라도 의심을 가지고 사전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방송에 금융에 관한 거짓말이 나가버리면 사람들은 그 거짓말을 TV에 나왔다는 이유로 신뢰한다. 경제교육이 부족한 한국인들의 특성이 바로 그런 바보같은 신뢰이니 말이다.

갈수록 미쳐가는 언론들과 방송종사자들이 1차적으로 문제를 이만큼 키워온것이다. 이희진 사기피해자들 중 자살자가 나온다면 이희진을 방송국에 앉힌자는 사실상 살인방조, 과실치사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기꾼들은 언제나 그렇듯 다시금 방송사에 얼굴을 들이밀 것이고 방송국은 언제나 그렇듯 다시 그들을 방송에 내보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기꾼들이 이렇게 미디어에 기를쓰고 진입하려는 이유는 뭘까. 저런 신뢰를 얻기위함, 그리고 유명해지기 위함이다. 본 글의 제목에 '앤디 워홀'을 넣은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만 떠도는, 앤디 워홀이 했다고 잘못 알려진 말이 하나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네가 똥을싸도 남들은 박수를 쳐 줄 것이다.

팝아트계의 거장이 했다는 말로 유명한 이 한 마디는 일단 거짓이다. 워홀은 이말을 한적도 없으나 이미 그가 했다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다가 이 상황을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기가막히게 들어맞는 말이기에 워홀을 제목에 붙였다.

저 말이 바로 금융사범들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다. 금융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행위이다. 투자를 할땐 기본적으로 기술에 대한 신뢰건, 인성에 대한 신뢰건 간에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유료로 운영되는 각종 투자자문이나, 펀딩 등도 결국 신뢰가 쌓여야 사람들이 몰린다. 그런데, 사기꾼들은 그만한 신뢰를 쌓을 시간도, 노력도, 실력도 없다. 저 세가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더 빨리 원하는 걸 이룩하고 싶기에 결국 저 세가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렇기에 사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저 세가지의 준비가 안되있는 사람이 가장 빠르게 신뢰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유명세'이다. 나쁜 유명세가 아니라 '선한' 유명세 말이다.


P씨의 경우엔 이를 아주 잘 이용해냈다. 기사들을 보면 평생에 걸쳐 몇백억을 기부하기로 했다, 십몇억을 기부했다, 몇십억을 기부했다 등등 마치 이미 기부한 금액만해도 수십억에 이르르는데 이는 대부분 약정에 의한 기부로 '이미' 기부한 금액이 아닌 '앞으로' 기부할 금액들이었다. (재밌는 것은 약정기부는 추후 기부를 파기해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그리고, 이를 파기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고 아주 유명인도 몇차례 파기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에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일단 '기부'라는 말이 나오면 감성적인 마음이 이성을 잡아먹어버린다. 일단 그 사람은 '좋은'사람이 되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좋은사람이라는 헛된 믿음은 내면에 깊이 자리잡아 본인을 그의 열렬한 지지자로 만들어버린다.

바로 오늘 P씨의 해명기사와 그의 거짓말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층들이 "어쨌든 기부는 했으니 속이 나쁜사람은 아니다" 라고 말을 하는것이다. 기사 댓글들을 보면 아주 코메디가 따로없는데, 상당히 많은 글들이 그의 '속'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니까 기부는 얼마간 했으니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거짓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다음 사기꾼을 재생산하는 단초가 된다. 믿음과 감사는 사기꾼, 거짓말에게 주어서는 안되는 덕목이다. 게다가 저 P씨는 저격이 시작된 뒤 몇 차례에 걸쳐 저격수를 비꼬았다.

선한 사람이 왜 끝까지 발뺌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선한사람이 아니기 떄문이다. 대중에게 거짓말을 밥먹듯 한 사람이 발뺌끝에 거짓말을 시인하고 사과했다고 그가 한 행동이 없던 행동이 되고, 그의 사과와 인정이 고맙고 용기있는 행동이되고, 그가 사실은 선한 사람이었던 것일까? 이미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끊임없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어줍잖게 믿는 것. 어줍잖게 편드는 것. 어줍잖게 처벌하는 것. 어줍잖게 용서하는 것.

일단 너무 쉽게 믿는다. 의심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왜일까? 왜 나에겐 사람들이 좋은 기회와 선한 악수를 청한다고 생각할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사고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귀찮은 증명을 하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줍잖게 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틀림'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다. 내가 간혹 사기금융에 걸린 이들이 검증을 요구해올때 이들에게 검증을 해주다보면 아주 짜증나는 일이 있다. 바로 요구자가 저 마지막 자존심을 부릴 때이다. 아주 알량한 자존심이지만 '알량하기' 때문에 더 부숴내기 힘들다.

자신의 일이 아닌 경우 사람들의 태도는 더 가관이다.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매번 욕하지만 정작 이런 일에 있어선 강력한 지탄을 하고 매장시키지 않는다. 마지막 연민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민들이 끝없이 모여 만들어진 것들이 이런 금융권 '꾼'들의 사기와 거짓말들이다.

이런 '나만 아니면 돼'나 다름없는 어줍잖은 처벌과 용서는 결국 본인이 그 상황에 쳐하는 날 비로소 심판받게 될 것을 모르는 듯 하다.

아마 이 세태로 보아선 전 국민이 직접 사기를 겪지 않는 이상 이러한 일들을 뿌리뽑긴 힘들 듯 하다. 교육이 바뀌어야 함은 분명한데 이미 감성이 지배한 나라에선 날카로운 이성을 키워내는 것은 사회에 반목을 조장하는 일이 되어버렸기에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이번 P씨를 저격한 저격수는 이번 일을 끝으로 저격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난 그 사람의 행보도 믿지 않지만, 어쨌든 이희진에 걸쳐 두 차례나 저격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떠나간다. 그는 이번 사건을 지나면서도 수도없이 많은 비난과 인신공격, P씨의 모교 K대 학생들에게 공격받았다.

나라의 미래, 기둥이 되야할 대학생들마저 거짓을 검증해내지 못한다. 이성이 필요한 순간에 마저도 감성에 마비되 허우적대며 맹목적으로 선배를 두둔할 뿐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정직한 지성이 위협을 감내해야하는 사회가 되고있다. 조희팔 사건이후 이런 사기가 끝이없고, 이런 류의 미디어 파워를 이용한 사기가 이희진 이후로도 벌써 몇차례나 발생했다. 그러나 나아지지 않고 정직한 지성은 이번에도 대중의 공격을 받았다.

저격수들이 사라져가는 이 사회에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안다.

수고로이 검증에 나서 줄 자가 없는 사회에서 스스로 상대를 검증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자들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맞닥뜨릴 뿐이다.

속을 것인가, 속일 것인가.

어떤 것이든 그 끝엔 눈물과 회한만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우리가 어떤 능력을 키워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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