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5층 옥상에 설치된 물탱크 안의 물이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2011년 기록적인 한파가 부산을 덮친 날 나는 텅 빈 커피가게 안에서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헛수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옥상까지 걸어 올라가 물탱크 안에 펄펄 끓는 물 7리터를 들이부었다. 그러기를 반나절. 밤이 되자 기온은 더 내려갔고 얼음은 녹아주지 않았다. 2주가 흘러도 기온이 영하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물을 다시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가게를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문 앞에 임시휴업이라는 팻말을 걸었다. 한참 입 소문을 타던 시기여서 방학을 맞아 찾아오는 대학생들이 아쉬워하며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한 달이 지나자 추위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탱크 안의 물이 녹으면서 옥상에서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관이 파열되었다. 물은 옥상외벽을 물바다로 만들더니 건물외벽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1층으로 뛰어내려와 직수가 유입되는 밸브를 잠그고 건물주에게 전화를 했다. “너희가 쓰고 있는 수도를 왜 내가 관리해야 하느냐.”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건물주를 찾아가 장사를 할 수 있게 보수해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봄이 될 때까지 임대료는 꼬박꼬박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미쉘양이 갑자기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달 동안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래서 밀라노 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물론 커피가게를 닫은 채로. 나는 가게 걱정을 떨칠 수 없었지만 진심으로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밀라노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그 다음날 새벽에 베니스로 가는 기차를 탔다.
베니스의 가면축제
그 날은 가면축제 첫날이었다. 코스튬을 입고 화려한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인파 속에서 우리는 잠시 멍해졌다. 사람들은 축제를 보란 듯이 즐기고 있었고 무척 행복해 보였다. 물이 안나오는 가게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점점 축제 분위기에 취해갔다.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노점상에서 멋진 가면도 샀다.
노란표식
카페 플로리안
산 마르코 광장에 자리잡은 카페 플로리안은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1720년 오픈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금빛으로 장식된 천장과 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에서 노곤해진 몸을 녹였다. 커피 한 잔과 달콤한 디저트가 도착하자, 그 순간 더 바랄 게 없어졌다. 문득 비행기표를 끊지 않았다면 물이 안 나오는 가게에서 하루 종일 건물주를 원망하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의 방향은 내가 원하는 각도로 바꿀 수 있었다. 조종관을 잡은 사람은 바로 나였으니까.
덧> 이 글은 작년에 썼던 베니스에서 얻은 자유에 사진과 살을 붙인 글입니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