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하는 당신에게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때부터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던 것 같다. 나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어린 나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는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지 않기 위해 드는 보험같았다. 설사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결혼을 하게 되면 사랑이 단순한 계약으로 변질될 확률이 더 많아 보였다.
공교롭게도 내 주변에는 엄마를 비롯해 결혼을 하신 여자분들이 행복하기는 고사하고 원만하게 사시는 분들이 한 분도 없었다. 그녀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일어나지 않은 확률이 더 많은 걱정에 둘러싸여 있었다. 세월이 지난 시점에 이러한 배경이 내 인생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나는 너무도 단순한 아이였다.
"그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 결혼이라면, 나는 보험을 드는 것보다 행복을 찾아 떠나겠어!"라고 말해버렸으니, 그 행복의 이름은 자유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라고.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너 스스로 소유하라고.
나에게 남편과 아이가 있다면, 그런 빈둥거림이 가능할까.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나는 요리, 빨래, 청소를 비롯한 잡다한 집안일에 서툴렀으며 아이를 잘 돌볼 정도로 섬세하고 사려 깊은 성격도 아니었다. 시댁과 왕래하며 낯선 어르신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도 자신 없었으며, 그럴 시간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 글을 읽고 '참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선을 절대 보지 않겠다고, 결혼을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가 그러셨다. "너는 참 너 생각 밖에 안 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되물었다. "엄마가 다시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엄마가 살아온 것처럼 살고 싶어, 아니면 지금의 나처럼 살고 싶어?"
그러자 엄마는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나처럼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후로 엄마는 결혼 이야기는 다시는 꺼내지 않으셨다. 나는 "값이 잘 나가는" 시기에 다양한 일을 해보면서 암흑의 터널 속에서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디뎠다.
갈매기 조나단은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왜 그러니 조나단?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왜 넌 다른 갈매기들처럼 되는 게 그리도 힘든 거니?
-뼈와 깃털뿐이어도 상관없어요. 엄마, 전 다만 공중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 가를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게 전부에요. 전 단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어르신들은 노후에 외롭다는 이유로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강요한다. 그 주장의 근거는 자식을 키울 때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자식들 덕분에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난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식들이 무슨 수로 외로움을 없애준다는 거지?
학창시절에 너무나 인기가 많아서 매일 꽃다발과 선물을 받던 한 친구가 나에게 너무 외롭다고 고백했을 때, 나는 외로움의 반대말은 사람들의 관심이 아님을 알아버렸다. 회사를 다닐 때, 동료가 남편이 먹통같이 대화가 안된다고 주절거리던 것도 기억난다. 반대편에 선 그 남편분도 그 동료에 대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사실 사람은 같이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외로움을 느낄 때는 재미가 없고 지루할 때이다.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을 동반하는 결혼 생활은 나에겐 정말 재미가 없고 지루하니 난 결혼을 하면 틀림없이 외로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비혼을 선택했다. 물론 결혼 생활이 재미있게 느껴지거나 가치 있게 느껴지는 사람은 결혼을 하면 된다. 그러나 결혼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선택이 되면 안된다.
비혼을 결심한 여자에겐 돈이 가장 중요하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나는 낡은 원룸을 전전하며 치안이 좋은 동네의 주상복합아파트를 욕망했다.
밤길을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고, 아파트 로비에 젊은 시큐리티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할 수 있다면, 내킬 때마다 비지니스나 퍼스트클래스 석을 예약해서 파리로 날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나는 내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 지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바로 자유의 실체였다.
아직도 부동산 사무실의 소장님이나 인터폰을 수리하러 오시는 기사님이 나에게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쓸 때 어색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색을 하고 사모님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호칭은 참 당황스럽다. 여자가 좋은 곳에 살면 그것은 모두 다 남편의 덕이란 말인가. 그럴 때마다 보란 듯이 더 성공할 거라고 마음먹는다.
난 매일 자유를 만난다. 내가 자유를 원했기 때문이다. 매일 두 시간의 산책을 하면서 쓸 데 없는 공상을 하고, 책을 읽는다. 가끔 친구들과 만나서 식사를 하고 새벽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꽃피우곤 한다. 난 세상의 모든 딸들이 보란 듯이 보험 대신 자유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경험하고 나누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이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나의 진심 어린 축복의 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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