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지 태어난 환경 때문에 남들과 같은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식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따라서 부모로 인해 자식이 아무 죄가 없음에도 함께 벌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여기 그러한 운명을 타고난 소년과 소녀가 있다. 범죄자의 자식이란 이유로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 김영리의 소설 ‘치타소녀와 좀비소년’이다.
태범은 뺑소니범의 아들이다. 태범의 아버지는 과거 살인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그가 사망한 후 미쳐버렸다. 그로 인해 아들인 태범도 알아보지 못한다. 이러한 가정을 견딜 수 없던 태범은 집을 나와 버린다. 그리고 학교에도 가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먹고 자며 노숙자 생활을 한다.
수리는 살인자의 딸이다. 수리의 아버지는 사람을 죽인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그 후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수리는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한 쪽을 잃어 의족을 차고 다닌다. 어느 날, 이렇게 불우한 운명의 두 사람이 만나게 되면서 그들은 닮아있는 서로의 상처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 책 제목에서 ‘치타소녀’는 수리를, ‘좀비소년’은 태범을 말한다. 수리는 비록 의족을 차고 있지만, 아빠에게 아직 잘 달릴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기를 시도한다. 이런 수리의 모습이 치타를 닮아 있어서 별명이 붙은 것이다. 그리고 태범은 말 그대로 좀비처럼 살아간다. 좀비라고 불리는 이유가 꼭 침울한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어서라기 보단 그냥 삶을 대하는 태범의 태도 자체가 좀비를 연상시킨다. 처음에는 이러한 자신의 운명에 체념하고 받아들이던 소년 소녀가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노숙자 할아버지에 대한 태범의 견해였다. 태범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를 보며 속으로 늙은 게 부럽다고 생각한다. 늙어버리면 사람들이 더 이상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지만, 젊었을 땐 그저 젊다는 이유로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이 구절을 보며 많은 공감이 되었다. 비록 태범만큼 절박하고 비참한 상황에 놓인 적은 없지만 종종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단지 어리다고, 청춘이라는 이유로 자꾸만 사람들이 도전을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 나이 든 사람에게는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데 젊은 사람들에게는 끊임없이 기대를 한다.
이 책은 공공장소에서는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주인공의 상황이 너무 비통해서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이야기를 구성해가는 작가의 필력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상황 묘사와 비유가 기가 막힌다. 또, 이 책은 가독성이 뛰어나다. 분량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읽기 편하게 쓰여 있어 술술 읽힌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들의 상처를 함께 보듬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