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깔보는 천상천하유아독존 남자, 그런 남자에게 기죽지 않고 당돌하게 맞서는 여자. 그리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모습에 반해버린다. 지금은 너무나 흔해 빠진 스토리다. 그렇지만 이러한 스토리도 처음 나왔을 때는 대중들에게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작품이 바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다.
베넷 가는 다섯 명의 딸들을 둔 평범한 집안이다. 수가 많은 만큼 딸들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첫째 제인 베넷은 한 마디로 말해서 ‘요조숙녀’다. 빼어난 외모는 물론 품위 있고 상냥한 성품까지 갖고 있다. 그 다음 둘째 딸이 바로 극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베넷이다. 엘리자베스는 언니처럼 얌전하진 않지만 기본적인 품위는 갖추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와 다른 명랑하고 당돌한 성격이 엘리자베스의 매력 포인트다. 그 밑에 셋째 동생 메리와 키티가 있고(비중이 크지 않다) 극의 판세를 뒤바꿔버리는 리디아가 마지막 막내딸이다. 주로 등장하는 남자 인물은 제인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빙리, 그리고 앞에 말한 ‘천상천하유아독존’ 남자인 다아시 등이 있다.
그러나 모든 인물이 이렇게 처음 설정대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들 중에서는 극이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인물도 있다. 사실 변화하는 것 보단 이야기가 더 심화되면서 그 인물을 더욱 깊게 파고들게 되는 것에 더 가깝다. 극의 초반에 나오는 인물의 성격이 ‘편견’이었다면, 후반부에는 그 인물이 가진 진짜 성품이 나온다. 예를 들어 다아시 같은 경우 초반에는 남을 쉽게 무시하는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비춰지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사실은 조심성이 많고 다른 사람에게 예의와 품위를 지키는 것을 중시하는 섬세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도 책을 읽다보면, 극의 초반에는 똑똑하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비춰지지만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좌우되고 누구보다 ‘편견’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오만과 편견>은 그저 밝은 러브스토리 같지만 마냥 가벼운 얘기는 아니다. 그래서 그냥 단순히 ‘고전 로맨스’를 보기 위해 책을 접하게 되면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었다가 읽으면서 점점 책의 심오한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다. 처음 책을 접할 때는 워낙 명성이 높은 책이기도 하고, 로맨스 장르의 원조 격이라 하여 일단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책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계속 사랑받고 칭송 받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로맨스 영화 중에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그저 소위 ‘어장녀’의 러브스토리로 보인다. 그러나 여러 번 보면 마침내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고 영화의 진짜 의도를 알게 된다. <오만과 편견>도 이와 같다. 처음에는 무례한 남자와 당찬 여자의 사랑이야기로만 느껴질 수 있지만, 여러 번 보고 나면 결코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