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햄은 아내와 딸이 있는 가장이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집의 가장들과는 조금 다르다. 딸의 친구에게 성적인 감정을 느끼고 아내와 오랜 시간 잠자리 한 번 가지지 않은 채 사는 것은 일반적인 가장들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번햄 못지않게 그의 주변 사람들도 상식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
아내는 말로는 “아직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았다”라고 하지만 이미 번햄에게 지쳐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뺏겨 버린다. 딸은 엄마 못지않게 아빠인 번햄을 못마땅해 하며 그녀의 친구는 친구의 아빠와 사랑에 빠진다. 옆집에 사는 리키는 게이를 혐오 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본인이 게이인 아버지와 함께 살며 대마초 일을 한다. 그리고 번햄의 딸을 흠모한다.
‘아메리칸 뷰티’라는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결코 ‘뷰티’하지 않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제목은 반어적이다. 그리고 이 반어적인 표현을 통해 영화의 주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아빠가 죽길 바라는 딸. 성관계를 구걸하는 남편과 그것을 거절하는 아내. 이것은 정상적인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 콩가루 가족은 모두 자신의 잘못이 들통 나고 심지어는 가장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결말에까지 이르게 된다.
만약 이 영화에서 아무도 죽지 않고, 그 누구도 자신의 오점을 들키지 않고 끝났으면 어땠을까? 물론 해피엔딩은 관객들에게 훨씬 많은 안정감을 주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다르다. 이 이야기가 단지 한 가족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주제에 맞는 비극적인 결말 때문이다. 영화의 주제가 ‘가족의 소중함’이 아닌 ‘가족의 붕괴’이기에 이를 위해서는 어두운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가족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신선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보통 ‘가족’이 들어가면 대부분 희망적인 내용에 주제 또한 사랑, 우애 등 밝은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전혀 달랐다. 비정상적인 캐릭터들과 그들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은 결코 가족영화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봐왔던 훈훈하고 밝은 분위기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어둡고 비극적이어서 굉장히 낯설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크게 위화감이 들지는 않는다. 모두가 비정상인 모습이 오히려 다른 정상적인 것들을 비정상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것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주제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주제인 ‘가족의 붕괴’ 보다는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은 대부분 욕구에 의한 것이다. 번햄의 행동은 자연스런 성적 욕구에 의한 것이고 아내의 행동 또한 지친 일상을 도피하려는 욕구의 하나이다. 그들의 행동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서 나타난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인간의 욕구와 그것이 절제되지 못하고 표출됐을 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