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작품들에서 ‘빨래’는 다양한 소재로 쓰인다. 예를 들면 뮤지컬 <빨래>에서는 주인공 나영과 솔롱고를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상황들 속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바로 ‘슬픈 현실을 잊고 무언가에 몰두하기 위한 소재’이다. 김희진 저자의 ‘옷의 시간들’ 속에서도 역시 이러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 오주는 오랜 연인과 이별한 여자이다. 이런 슬픈 상황을 잊기 위해 오주는 ‘빨래’를 하기로 하지만 집에서 세탁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고민하던 오주는 집 근처에 있는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하기로 한다.
오주가 빨래방에 갔을 때 또 다른 인물들이 그곳에 있었다. 중년남자 둘과 30대 쯤 되어 보이는 여자, 미태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매일 9번 세탁기를 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이웃들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그저 빨래가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여러 번 빨래방에 드나들면서 오주는 9번 세탁기 남자를 제외한 이웃들과 친해진다. 그러면서 미태가 한 가지 내기를 제안하게 된다. 바로 9번 세탁기 남자와 말을 섞어 보라는 것이었다. 오주는 내기를 승낙하고 9번 남자의 입을 열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을 시작한다.
사실 평소에 이런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고로 영화와 소설은 팍팍한 현실을 잊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다룬 경우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꼈다. 그러나 ‘옷의 시간들’은 달랐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 마음이 갔다. 인물들 하나하나에 감정이입이 되었고 책을 읽는 내내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마음 졸이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소설 속의 일일 뿐인데도 꼭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최근에 사람은 누구나 하나쯤은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 자기감정을 숨기고, 밝게 지내던 사람도 마음속으로는 과거에 대한 아픔을 버리지 못한 채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이 책의 인물들도 그랬다. 늘 아무 생각 없이 밝게만 보였던 미태도 알고 보면 상처가 있었고, 마음을 드러내지 않던 9번 세탁기 남자 역시 오랜 시간 잊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다. 물론 모든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지만 ‘옷의 시간들’ 속 인물들은 유난히 더 마음이 갔다. 읽는 내내 인물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옷의 시간들’은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추천해주고 싶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결국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 받고, 사람에 의해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과 닮은 인물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속마음을 바라보고 슬픔을 이겨냈으면 한다.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무게 속에서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