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 내야 할 돈을 챙겨가지 못했는데 선생님이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고 했다. 그 때부터 내 안에 악마가 생겼다.” 죄수 신창원이 한 말이다.
이렇듯 괴물이 된 사람들은 모두 어린 시절의 어떠한 경험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 제임스 맥어보이가 맡은, 영화 <23 아이덴티티> 속 주인공 ‘케빈’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제목 그대로 23가지의 인격이 있다. 비교적 온순한 타입인 디자이너 배리, 유일한 여자 인격 패트리샤, 가장 이성적인 인물인 데니스, 최연소 인격 헤드윅 등 여러 인격이 있는데 그들 모두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인격이 바로 ‘비스트’이다. 다른 인격들은 비스트에게 바치기 위해 세 소녀를 납치한다. 그리고 그 소녀들을 한 방에 가두고 인격들이 돌아가면서 감시하기 시작한다.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크레덴스는 어린 시절 당했던 가정 폭력으로 인해 괴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23 아이덴티티>의 케빈도 계속되는 가정 폭력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에 23개의 인격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가정 폭력을 당했던 인물은 케빈만이 아니었다. 납치된 소녀 중 하나였던 케이시도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였다. 이 사실은 영화 후반부에 전체적 흐름을 바꿔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천차만별이다. 넘치게 사랑을 받으며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외로움과 싸우며 일찍 철이 들어버린 사람이 있다. TV 프로그램 중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긴 부부를 촬영하며 상담하고, 문제점을 개선하여 부부관계를 좋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상담을 하면서 가끔씩 부부는 서로 역할을 바꾸는 ‘사이코드라마’라는 걸 하는데, 이 드라마의 주 배경은 주로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이다. 연기를 하면서 한 사람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한 사람은 그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맡음으로써 상대방의 상처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의 부부 문제는 현실 속 결혼생활 때문이 아닌 배우자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생긴 것들이었다. 어렸을 때 겪었던 외로움, 무시, 비난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 그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혀 있었고, 그 빈자리를 배우자가 미처 다 채워주지 못해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부부는 꾸준한 상담을 받고 서로의 언행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이렇듯 어른이 돼서 느끼는 대부분의 상처는 모두 ‘어린 시절’의 영향을 받는다. 이것 또한 지나간다고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간다고 해서 그 때 생긴 아픔까지 저절로 치유되지는 않는 것이다. <23 아이덴티티> 속에서는 이렇게 상처를 간직한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트라우마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단지 인물의 상처와 살아온 배경만 보여주고 끝난다. 그래서 더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누군가를 괴물로 만든 사람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하나 둘 사라지다 보면 마음속에 괴물을 품고 사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