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삶은 어릴 적부터 범상치 않다. 이름부터 오줌을 뜻하는 피싱과 비슷한 ‘피신’이고 그 탓에 놀림도 많이 받는다. 피신은 자신의 콤플렉스인 이름을 해결하기 위해 수업시간마다 자신을 피신이 아닌 이름 전체를 줄인 ‘파이’라고 알리고 다닌다.
파이가 남들과 다른 점은 또 있었다. 그는 동물과 교감이 가능했다. 그래서 동물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는데 인도에서는 이러한 삶이 한계가 있어 결국 가족들과 함께 인도를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일본 배를 타고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배가 침몰하여 파이는 가족들 모두를 잃는다. 그렇게 혼자 동물들과 살아남는 파이. 그러나 그 동물들마저도 모두 죽고 호랑이 리처드 파커만 남는다. 파이는 유일하게 같이 있을 수 있는 리처드 파커를 길들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조금씩 훈련을 시키기 시작한다. 결국 파커는 파이에게 길들여지고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태평양을 표류한다.
그러던 어느 날, 파이는 섬 하나를 만나게 된다. 파이는 그 곳에서 살려 했으나 식충섬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섬을 떠난다. 그리고 또다시 표류하던 중 또 다른 섬 하나를 발견한다. 파커는 그대로 섬에 있는 밀림으로 들어가 버리고 파이는 섬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구조된다. 무사히 돌아온 파이는 이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삼촌이 보낸 소설가에게 들려준다.
영화를 보면 신과 같은 영적인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주로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은 대상은 ‘신’이다. 초반에 보면 파이는 기존 종교는 힌두교이지만 다른 종교들을 접하게 되면서 여러 신들을 섬기게 된다. 이렇듯 그의 인생에서 신은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태평양을 표류하면서 파이가 가장 많이 의지하는 것도 함께 낙오된 리처드 파커가 아닌 신이다. 중간에 폭풍우를 만나면서 잠시 신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섬을 찾아 살아남은 후 파이는 다시 신에게 감사하게 된다.
폭풍우가 내릴 때 파이가 다른 신들에게 ‘모두 하느님을 섬기라’ 하자 폭풍우는 더욱 거세진다. 그러나 파이가 포기하고 신에게 굴복하자 그는 섬에 닿게 된다. 후반부에서 파이는 자신의 원래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자 동물들을 주방장, 엄마 등 사람에 빗대어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소설가에게 이 두 이야기 중 어느 것이 더 좋냐 묻고 소설가는 원래 이야기가 더 좋다고 대답한다. 이렇듯 영화를 보다보면 장면 중간 중간에 목적이 드러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에 비현실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이 공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과 진실하게 마주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자 새로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중간에 있던 것이 바로 동물과의 교감이었다.
동물과 바다 한 가운데에 남아 함께 대화를 하며 지내는 것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함께 지내며 교감을 하는 듯 했던 리처드 파커는 마지막에 아무 말 없이 원래 고향인 정글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양면적인 면 때문에 영화가 ‘비현실적이다, 현실적이다‘라는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영화가 상영했던 당시에 3D로 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다. 영화를 본 후에 그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취향과 달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