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기록에 관하여] 유나바머

lekang(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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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오늘 하루와 상관 없는 사진이다.

하루와 상관 없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오를 때가 있다. 오늘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려고 허리를 굽히다 생각났다. 유-나-바-머. 어딘가의 지명 같아 보이는 단어는 연쇄 폭탄마의 이름이었다.

1980년대, 사람들이 편지를 열기 두렵게 하던 광인. 본명은 시어도어 카진스키. 주로 대학과 항공사 위주로 사제 폭탄을 보내서 FBI는 univer + airline, una bommer라고 이름을 붙였다. UC 버클리 대학의 최연소 조교수였지만 어느 날 강단을 사임하고 시골로 낙향한 후, 세상에 대한 불만을 편지에 담아 이곳 저곳으로 뿌려대는 사람이었다. 이 행위는 자신이 살던 오두막이 개발로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더 난폭해져, 수족 절단에서 더 심각해져 사망자까지 발생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건설적인 해결 방법을 찾았겠지만, 유나바머에겐 이 방법만이 유일했었나보다.

유나바머를 명확히 기억하고 있던 이유는 잡힌 경위가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수사는 오리무중인 상태였는데, 유나바머의 동생이 FBI에 자기 형이 유나바머인 것 같다고 제보를 했다. 마지막 폭탄 테러 이후 방송사들이 받은 50페이지짜리 선언문 '산업 사회와 그 미래'에서 자기 형의 문체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FBI도 마냥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테러가 일어난 지역의 축선 중 유나바머가 살거나 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고, 카진스키의 과거 논문과 선언문을 비교해 본 결과 유력한 용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내렸다. 결국 수색 끝에 카진스키의 거처에서 폭발물과 '산업사회와 그 미래'의 자필 원고를 발견했고 결국 유나바머는 종신형 선고를 받았다.

'형의 문체와 유사하다. 글을 읽으니 형일 것 같다'. 글을 읽고 누가 썼는 지 눈치챈다는 게 낯설지만은 않았다. 만화를 보면서 아, 이건 이 사람 작품인 것 같은데- 하면 어김없이 그 작가였다. 글도 그랬다. 디시인사이드에서 '노가다 하고 왔다'로 시작하는 대구대 야옹이부터, 로그아웃하고 댓글 달다가 말하는 게 똑같아 지적당하자 도망가는 유동까지. 글은 어쩌면 지문과도 같아서, 꼼꼼히 살펴보면 주인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글에는 그 사람이 겪었던 삶이 묻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에게는 면역문이란게 존재한다. 사람마다 걸린 병이 다르기에 가진 항체도 서로 달라서, 면역 항체를 보면 병의 기록을 알 수 있고, 항체의 주인도 특정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감기 바이러스부터 수두, 홍역, 볼거리 항체까지. 많은 병을 걸렸다 나은 사람의 면역문은 온갖 항체들로 울퉁불퉁할 것이고, 손 깨끗이 씻고 질병과 먼 곳에서 산 사람은 매끄럽고 평평하겠지. 글도 단어들을 보면 작가가 어떤 인간인 지 알게 된다. 풍파를 겪은 사람의 글은 거칠고, 마음 속 상처가 있는 사람의 글은 단어가 아프고 어둡다. 상처를 감추려고 해도, 글에서는 흐르는 피 냄새가 난다.

글을 쓰며 유리 책상 위에 엄지손가락을 꾹 찍어 본다. 옆에서 보면 기름기 섞인 지문이 보인다. 지문이 남듯 이 글도 남겠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 일단 퇴고따위 하지 않은 글이란 건 알 수 있겠다만. 모르겠다. 일단 친구가 쓴 소설부터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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