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위스키 반병 + 소주 반병 + 턱걸이 10개 + 케틀벨 120개의 후유증이었다. 운동을 하니 몸이 나빠지는 일상이다.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진다는 말을 믿었는데, 자꾸 술을 마시고 운동을 해서인가? 감기가 다 낫지 않았는 데 운동을 해서인가? 어찌됐든 3주동안 아프다 보니 사람이 자꾸 가라앉게 된다.
가라앉는 이유 중 또 다른 건 재치가루가 다 떨어져서인 이유도 있다. 원래 글 쓰기 전, 사람 만나기 전, 일어났을 때 한번씩 들어마셔야 하는데 오랫동안 아프고 일 생각만 하다 보니 재치가루가 차질 않는다. 재치가루를 채우려면 '시옷의 세계' 혹은 올리버 색스의 '온더무브'같은, 좋은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함께 길을 걸었다. 내가 좋아요? 뜬금없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알았느냐며 빙그레 웃는 내게 아이는 비밀을 알려주듯 설명한다. 나를 자꾸 쳐다보잖아요. 자꾸 쳐다보면 좋아하는 거예요. 아이와 놀아주기 위한 시간이 아이와 데이트를 하는 시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도 이모를 좋아해요. 이렇게 게처럼 걷고 있잖아요. 게걸음으로 나를 보며 걷는 아이를 따라 나도 게걸음을 한다. 우리는 마주본 채 게처럼 옆으로 걸어서 산책을 한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 기쁘다 말하는 내게 아이는 대답한다. 그럼, 우리 친구할가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니 잠깐 필사라도 한다. 나도 최근 자주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어 기쁘다.
@springfield 님의 단락을 나누는 글쓰기가 마음에 든다.
집에 오며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5600번 버스를 탔고, 또 서서 왔다. 5600번 버스를 타자 불을 꺼 줬고, 생땍쥐베리의 야간비행이 생각났다. 늦은 밤 버스를 타면 내리지 않고 머나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 생땍쥐베리도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B612까지 날아갔었을 것이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트위터의 타임라인 웃짤을 끊임없이 내려가며 읽었다. 나도 살짝 훔쳐봤지만 그렇게까지 유익하지 않았다 - 내 웹서핑 패턴이 생각났고 뜬금없는 자기반성을 했다.
5600번 버스에서 누가 내 백팩을 툭툭 건드렸다. 외국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가방 밑을 칼로 째고 값나가는 것을 털어간다는 흉흉한 이야기를 들은 턱에 고개를 돌려 노려봤고, 거기에선 내 백팩이 엄한 사람의 얼굴을 털고 있었다. 부끄러움에 잽싸게 백팩을 바닥으로 내렸다. 모르는 사람과 눈빛이 얽히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다 - 심지어 내 실수 때문에라면 더욱 더. 죄송해요. 백팩이 그렇게 큰 줄 몰랐어요!
감기에 결국 굴복하고 4월인데 전기장판을 샀다. 3주간 아프니 장사가 없다. 27000원짜리 전기장판이지만 한일 제품이다. 따뜻하다. 마음에 들었다.
학교에서 소금꽃 후배들이 놀러오라고 연락했지만 아파서 못 간다고 하자 페이스톡으로 걱정해 줬다. 좋은 후배들이다. 역시 학교에서 남는 건 친구와 동아리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온다. 여러분들도 좋은 밤이 되시길. 운전 조심하기를. 그리고 꿈 없는 조용한 밤이 되길.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