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읽기를 좋아하거나, 더 나아가 소설이나 상상력의 산물인 픽션 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을 것입니다. (이 얘기를 하게 된 이상 생각해본 적 없어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호기심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지.)
“소설이라는 건 단지 흥밋거리에 불과하지 않은가. 소설이나 동화가 실용적인 많은 책들에 비해서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 더 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저는 이십대 시절에,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소설이 실용적인가?”
그 물음은, 소설이 지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당장 우리가 집어 들어 먹을 수 있는 빵이나 탈 수 있는 차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소설이나 이야기를 그저 좋아하기만 하고 즐겁게 읽기만 했던 저는,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엔, 소설이 빵과 차보다 나은 점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답하진 못하고 집에 가서 열심히 고민한 게, '그래, 소설은 실용적이지 않지. 하지만 다른 가치가 있어! 우리의 정서를 풍요롭게 해주잖아? 정신을 살찌우는 것이고.' 하고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제 결론은 틀렸습니다.
어릴 적 그가 다시 물어온다면, 소설은 그 어떤 것보다 '실용적'이라고 대답해줄 것입니다. '실용적'이라는 말을 다른 뜻으로 정의하는 꼼수는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 대답은 ‘실제로 쓰거나 쓰임’이라는 ‘실용’, 그 사전적 의미 그대로입니다.
“소설책을 냄비 받침으로 쓰거나 두꺼운 것은 목침으로 쓸 수도 있다는 뜻이야.” 와 같이 허무 개그로 마무리하지 않고도 소설의 실용성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채워 온 상상력의 결과물들
소설이 실용적인 첫 번째 근거를 들어볼까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과학과 일상에서 쓰는 기술들은, 애초에 소설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처음 소설에서 등장한 '인공 장기'는 그 당시 사람들 중 몇몇은 과도한 상상력이라며 비웃었겠지만, 지금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폴로 달 착륙 몇 해 전에 나온 레이 브래드버리의 <시작의 끝>이라는 단편에는 달 착륙을 위해 셔틀에 탑승하는 사람의 묘사가 나옵니다. 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는 명제도 SF소설에서 비롯되었고, 우주여행을 위해 수많은 과학적 연구와 발명이 쏟아졌는데 '네비게이션'은 대표적인 우주 연구의 성과 중 하나입니다. '로봇 공학'이라는 말은 지금 널리 통용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가 널리 퍼뜨린 말입니다. 아시모프가 아니었다면, 현대 자동차 공장에서 줄지어 자동차를 조립하는 로봇들은 그 자리에 없을 거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라는 말도 필립 딕의 소설에서 언급되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소설의 상상력에 기대어 발달해왔습니다. 물론 과학과 문학은 상상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습니다.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과학적 상상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직접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주, '실용적'으로 말입니다.
소설의 실용성이 과학 분야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린 헌트는 <인권의 발명>이라는 책에서, 현대적인 '인권' 개념의 탄생은 소설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합니다. 인권 개념이 탄생한 18세기엔, 권리의 평등이 자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권 개념의 정립은 사람들의 '공감'이라는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죠. 그 공감의 감각은 현대적 개념의 '소설'이 탄생하면서 사람들에게 뿌리내렸다는 말입니다. <인권의 발명> 책의 첫 챕터의 소제목은 이것입니다. '소설을 읽고 평등을 상상하다'
“새로운 독서는 새로운 개인적 경험(공감)을 창출했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관념(인권)을 낳았다.”
-린 헌트, <인권의 발명>
우리가 누려온 '인권'. 나와 다른 인간들과의 공존을 위해 커다란 축으로 기능하는 그 인권의 개념만큼 실용적인 것이 또 있을까요.
소설은 인권뿐만 아니고, 역사의 선봉에 서서 수많은 사회적 통념을 깨부수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지극히 '이데올로기'적인 면도 갖고 있지만, 그것이 품은 새로운 주제가 사회를 흔들고 변혁의 밑거름이 될 때는 지극히 '실용적'인 것이 되어 온 것입니다.
소설이 인간의 ‘공감능력’을 발현시키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18세기만의 일은 아닙니다. 지금도 픽션은 그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소설은 다분히 '실용적'입니다. 그 실용성은 자기계발서나 직접적인 기술을 전하는 책보다 더 오래, 더 큰 파급력으로, 때로는 그것이 소설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게 은밀히 발현되어 온 것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끝끝내 냄비 받침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선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