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책을 단어들을 써놓은 저장소라거나, 제 생각과 자기반성을 적어놓는 비밀스런 장소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공책에 무엇을 적어놓았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즉 종이에 단어를 적는 행위에도 관심이 있지요.
항상 공책에 씁니다. 작은 사각형들로 가득 찬 모눈 종이 공책을 특히 좋아합니다.
-폴 오스터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사용하는 공책이나 펜 같은 것에 엄격한 자기 기준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아무 종이에 그저 손에 잡히는 펜으로 쓰지 않겠다는 이상한 신념 말입니다. 폴 오스터는 그런 부류 중에서도 좀 유별한 경우입니다. 적당한 공책을 골라 쓰는 걸 넘어서 공책 성애자 수준이지요. ‘공책 패티쉬’라는 말이 없는 걸 보면, 공책에 성적인 흥분을 느낄 거라는 의심은 비약일 듯싶지만, 자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공책을 즐겨 쓰도록 할 정도니 보통 애정은 아니라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어떤 공책을 쓰느냐, 즉 공책의 색감이나 크기, 질감 따위가 실제로 글의 내용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제 생각엔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자, 지금부터 글을 써볼까.’ 하고 그 날의 글쓰기를 시작하는 작가의 마음과 기분엔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책의 선택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논리적인 이유보다는 내 기준에 맞는 공책이 아니면 좋은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최면 내지는, 선사 시대의 동물 벽화처럼 좋은 글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에 가까울 것입니다.
제겐 일기장도, 메모장도 아닌 용도의 공책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 공책은 일기장이라고 말할 수도, 메모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명확하게 무얼 쓰겠다고 정해놓은 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뭔가를 자유롭게 쓰기 위한 용도입니다.
저도 폴오스터처럼 공책을 애정하고, 공책에 대한 이상한 신념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 공책이어서는 안 됩니다.(펜에 대해서도 비논리적인 기준을 갖고 있지요.) 공책은 제가 가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내 작은 가방 속에 실려 다녀야 하므로 엄격한 선택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크기는 너무 작아서도 안 되고 너무 커서도 곤란합니다. 제가 즐겨 쓰는 가방 중에 가장 작은 가방에도 들어가는 크기여야 합니다. 경험상 A5 크기가 적당합니다. 겉표지는 부드럽게 휘어지되 찢어지거나 쉽게 훼손되지 않아야 합니다. 공책을 다 채울 때까지 갖고 다녀야 합니다. 부지런히 쓰면 몇 달, 좀 게으르면 2-3년이 될 수도 있으므로, 쓴 글과 종이를 최대한 보호하되 가방의 움직임도 받아낼 유연함도 있어야 합니다. 그 같은 조건엔 PP재질 겉표지가 제격입니다.
속지는 일반 대학노트처럼 가로줄만 있어야 하고 제 글씨 크기엔 0.7cm간격이면 적당합니다. 풀로 제본된 것은 불편합니다. 작은 공간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면만 펴고 쓰기 좋게 다른 면이 완전히 넘어가는 링 제본 공책이어야 합니다.
몇 년 전, 대학원 기숙사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마침 공책을 다 써서 새 공책을 사야 했습니다. 전 제 기준에 부합하는 공책을 구하기 위해 저녁 시간을 투자해 도시의 중심가로 나가서 문구점들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새 공책을 쇼핑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괜찮다고 소문난 여성이 나오기로 한 미팅에 나가는 기분이랄까요.
지하철역을 나와서 낯선 거리를 걸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문구점을 찾았습니다. 우연히 제 뒤를 따르던 사람이 있었다면, 저를 오늘 갓 상경한 시골 청년으로 상정하고 연민의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심가엔 꽤 큰 문구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3군데쯤 돌아다녔는데 조건에 들어맞는 공책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카메라가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었다면, 그리고 상점은 비추지 않고 제 표정과 행동만 찍었다면, 시청자는 제가 영락없이 고가의 시계나 다이아가 박힌 반지를 선택하려한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선택의 과정은 신중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귀한 물건을 찾는 일엔 언제나 난관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전 빨리 사서 돌아가야지, 하는 조급함은 없었습니다.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지요. 누군가가 취미란에 ‘낚시’를 적을 때, 전 ‘내 맘에 드는 공책 찾기’로 적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니면서 새로 알게 되었던 건, 문구점마다 참 다양한 노트를 팔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구점마다 각기 다른 브랜드 위주로 진열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문구 회사의 영업 사원들이 이 지역에서 다 부지런히 영업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디자인, 색상, 재질이 제각각이었습니다. A5크기에, PP재질의 앞뒤 표지를 가진, 줄 간격 0.7cm인 링 공책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꽤나 평범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문구점에 들어가면 조용히 움직이며 세심하게 찾았습니다. 제가 찾는 공책의 조건을 문구점 주인에게 굳이 알리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찾는데 저보다 더 오래 걸릴 것 같았습니다.
4번째 방문한 문구점에서 찾던 공책을 발견했습니다. 표지 색도 형광 빛이어서 맘에 들었습니다. 두 권을 사서 한 권은 독서노트로, 한 권은 ‘프리 라이팅 노트’로 사용했습니다.
사실 이 글의 초고도 그때 산 ‘프리 라이팅 노트’에 저장된 글입니다. 글을 쓰면서 내용의 70%이상 바뀌긴 했지만, 이 글의 씨앗 역할은 충분히 담당했지요. 가끔 다 쓴 노트를 뒤져보곤 합니다. 잡다한 감상과 잡문, 소설 구성과 단편 소설 초고도 있습니다. 목적과 테마를 규정하기 힘든 공책인데 제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기록 유산이지요.
덤) 프리 라이팅
요즘은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비율이 높아져서 예전처럼 육필로 적는 경우는 많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트북보다 공책을 적극 활용하는 글쓰기가 있습니다. 바로 ‘프리 라이팅(Free writing)’으로 글쓰기 연습을 할 때입니다. 많은 글쓰기 책에서 ‘프리 라이팅’에 대해 말합니다. 대표적인 책으로,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공책을 펴고 5~10분간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나오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쓰는 겁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것에 대한 문장을 써내려가도 됩니다. 머물러 생각하기보다 속도가 중요합니다. 처음엔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지 않고, 쏟아져 나옵니다. 10개의 문장을 썼다면 그 10개가 모두 연관성이 없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걸 하면 할수록 쓰는 속도가 빨라지고, 머릿속에서 쏟아지는 문장들을 걸러내고 앞에 문장과 연관된 문장을 찾아내는 여유도 생기게 됩니다.
‘프리 라이팅’ 으로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완성도 있는 글을 쓰긴 어렵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쏟아내는 글쓰기이므로, 글을 쓰는 속도를 높이고 직관을 기르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이른바 연습법이지요.
저는 이 연습을 대학교 입학 직후에 했는데, 이후 시험을 치를 때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대학 시험이라는 것이 머릿속으로 기억했던 지식을 짧은 시간 내에 쏟아내어 조직하는 작업이지요. 바로 ‘프리 라이팅’으로 가장 훈련이 잘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후 문학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초고를 뜨거울 때 얼른 써버리려고 하는 상황에서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영양소로 바뀌어 내 몸 속을 돌아다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공책을 가득 채운 ‘프리 라이팅’의 흔적들은 가끔씩 공책을 열 때마다 제게 쓸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