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학에 갔을 때, 사설기숙사 2층에 살던 어떤 동급생을 잠깐 마음에 들어 했었다.
같은 기숙사 형들이 주선해서 겨우 소개를 받았다. 20분, 30분 훈훈하게 이야기를 했다. 남친과는 곧 헤어질 것 같이 소홀해졌고, 때마침 이야기를 듣고 나왔다고.
기쁜 마음에 번호를 주었는데, 핸드폰을 놔두고 나와서 저장할 수 없다며 곤란해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에 이야기하자 약속하고 헤어졌었다.
며칠뒤, 우연히 그 여자의 싸이월드를 보게 되었는데, 소원해졌다던 그 잘생긴 남자친구와 다시 사이가 좋아져 있었다. 다정하게 같이 찍은 포즈.
난 3일간 밖에 나올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음악만 듣다가, 수척해질 때쯤 나왔다. 나와 만난 이후 그 여자는 소원하던 남친과의 관계를 해결했던 것이었다. 날 만난 그 날 이후로.
아마 그게 내 20대를 바꾼 큰 계기점 중 하나였다.
더 이상 남의 인생에 끼어든 엑스트라로 끝내지는 않는 삶을 살겠다고.
그 해, 12월 30일. Nujabes의 world's end rhapsody를 무한반복으로 들으면서 고향에 내려갔다.
그게 벌써 약 10년 전이다. 그 뒤로 정말 많은 게 바뀌었고, 찐따같던 나도 이것저것 참 많이 바꾼 것 같다.
그러나 나는 10년 전과 여전히 같은 마음이다.
내 인생에 내가 엑스트라로, 누군가의 도구가 되버리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너네들의 삶에 끼어든 엑스트라 따위는 되지 않겠다고. 차라리 악역을 맡겠다고.
엑스트라는 잊혀지겠지만, 악역은 경외시되어 언젠가는 기억할테니까.
다시 10년 전, 눈오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피가나게 움겨쥔 주먹을 기억한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