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글 |
한 우물 깊게 파기
5살에 취미로 시작했던 발레는 내 인생 전부였다.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방과 후에 친구들이 과외나 이론학원에 다닐 시간에 나는 발레학원에 다녔다. 집-학교-무용학원-집이 나의 학창시절 이동 경로였다.
미래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발레를 전공해서가 아니라, 내 또래 친구들의 미래는 모두 비슷했다. 학교에서 정한 규율에 따르며 1등이 되기 위해 공부했다. 답이 정해진 시험 문제를 열심히 외워야 했고,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에는 입학해야 했다. 전공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 그다음에 원하는 전공으로 바꾸어도 되었다.
대학을 위해서 우리는 재수나 삼수도 당연한 것이 되었다. 아니, 재수는 필수였다. 대학 입학 이후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해야 했고, 다음 학위를 위해 대학에 남거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 중에 선택하게 된다. 혹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거나 말이다. 취업 후에는 욕이 나올지라도 악착같이 버텨서 승진하고 살아남아 정년퇴직을 해야 하고, 연금을 받아야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그렇게 설계된 인생을 바라보고 달렸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용이라는 예체능 전공생이었기 때문에 태도 하나에도 불량함이 보여선 안 되었다. 예술을 한다고 학업에 소홀하거나 조금의 반항에도 반 분위기를 선동한다고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튀지 않으려 노력했고, 모범생으로 지냈다. 너무 바르기만 했던 나를 친구들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로지 대학에서 자유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옥 같은 고등학생 시절을 견디었다.
어렵게 입학한 대학은 더욱 자유롭지 못한 곳이었다. 하나의 전공과목에 갇혀 깊은 우물을 파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우물 속에서 올려다본 하늘이 전부인 삶. 나는 우물 파기를 멈추고 우물 밖으로 나왔다. 휴학 후 나는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 해외여행을 다녔는데, 맨 처음 방문한 국가는 ‘인도'였다. 인도에서 나는 굉장한 문화충격을 받았고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인도 사람들의 삶을 보고 느낀 것도 있었지만,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도 깨달은 점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먼 미래가 아닌 ‘현재 본인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었다.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서 가이드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며 여행하는 사람, 전세금으로 집 없이 세계여행을 하는 신혼부부, 죽기 전에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노인 등 말이다.
나는 마치 닭장을 나온 암탉이 된 것 같았다. 닭장 속에서 안전하게 지내며 시간 맞춰 주는 밥을 먹고 그 대가로 열심히 알을 낳아 바치는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닭장을 나와 스스로 온갖 것들을 찾아 먹고 닭장보다 더 높고 멀리 날기도 하며 생계의 위험이 있지만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 말이다.
나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삶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당최 무슨 일을 해야 좋은지 떠오르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물 속 하늘구경
대학 졸업 후 나의 첫 직장은 제주도에 있는 창업지원 기관이었다. 이 기관에서는 Co-working Space라는 업무협업공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J-Space), 나는 이 공간을 담당하는 Community Manager가 되었다. 내가 제주도에 있는 창업기관에 지원한 이유는 이전에 하고 있던 ‘무용’이 라는 영역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였다. 스타트업과 관련된 기관이라서 다른 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업무를 할 것 같은 기대감도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제주'라는 낯선 환경과 영역에서 일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하거나, 주어진 일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진행해도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퇴사의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임시로 맡은 일이 있었다. 새로운 직원이 채용되기 전까지 말이다. 임시라서 좋았던 점은 정해진 룰이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되었다. 단점은 어느 정도 나의 색을 노출하지 않고 적절하게 유지하는 정도만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어떤 솔루션을 제시할 수도, 진행할 수도 없는 아주 어중간한 상태 말이다. 곧 새로운 직원이 채용되었고, 나는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담당자와 충분한 이야기도 나누었으며 인수인계도 마쳤다. 나의 손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일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내가 잘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끙끙거릴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계속 내가 했으면 한다는 오더가 있었다. 나는 왜 내가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 들었던 말 중에 내가 사직서를 쓰겠노라 마음먹은 말이 있었다.
“어느 회사를 가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 주어진 일은 그냥 해야 하는 거예요.”
맞는 말이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나는 회사에 고용되었다. 회사가 시키는 일은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시키는 일만 하는 월급쟁이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은 할 수 없었다. 효율적이지 못 한 일은 하기 싫었다. 내가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온 거니까. 시키는 일을 할 것이라면 제주까지 오지도 않았다. 서울에서 내가 잘 아는 무용이라는 영역의 일을 했겠지. 나는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해야 했다. 이런 나를 채용한 기업도, 이런 곳에서 일하는 나에게도 모두에게 발전이 없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줄 것이다. 서로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 대신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처리하는 직원을 새로 채용할 것인가, 나와 회사가 타협하여 나를 활용해 서로 시너지를 낼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그것을 푸는 데에는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이곳에서 타협점을 찾았고, 나름대로 회사에 만족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첫 직장으로 굉장히 좋은 곳을 만난 셈이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다른 직장에 가서도 이런 좋은 결말이 될 수 있을까? 그때 들은 말처럼,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도 없을 것이고 시키면 그냥 ‘네, 알겠습니다.’하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우물 밖 세상구경
한동안 나는 이곳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고민했다. 어쩌면 나는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혼자 자유롭게 일하면서도 살 수 있을까? 그런 것이 가능할까? 한국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한국이 아니라면 외국에선 그런 시스템이 가능한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일하는 곳, J-Space에서 노트북만 들고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Digital Nomads를 만나게 되었다. 국적과 직업이 다양한 이들을 보면서 여행도 하고 돈도 버는 삶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직에 소속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프리랜서)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정해진 일만 하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스스로 유목민이 되었다.
Digital Nomad(디지털 노마드)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발자, 웹디자이너 등 이었다. 그 외 적은 비율이지만 출판사나 컨설팅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도 있었다. Digital이 아니더라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스스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 다니며 일 또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나는 Nomad Worker(노마드워커)라고 불렀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고 나에겐 많은 용기를 주었다. 그들은 나도 충분히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디지털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장소에 구애 없이 일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생각의 방식이 나와 너무도 다르게 열려있었다. 안된다고만 생각하고 동경만 하던 나는 그들이 준 자극으로 문을 활짝 열 수 있었다.
앞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일을 하게 될 것이며 자유롭게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굉장히 효율적이고 본인이 원하는 일들을 말이다. 업의 정의도 바뀔 것이고 삶의 형태도 바뀔 것이다. 이들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의 ‘업’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내가 본 세상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공유하고 많은 사람에게 자극을 주고 싶었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디지털노마드 혹은 노마드워커, 리모트로 일 하는 방식이 낯설다. 신뢰도 없을 뿐 아니라 본인이 노마드워커라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일과 삶의 방식일 뿐이다. 그래서 이 책 을 쓰게 되었다. 책에는 내가 제주에서 인연이 되어 알고 지내는 국내외 노마드워커, 리모트워크로 일하는 팀과 이야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노마드워커와 리모트 워크에 대해서 알기를 바라며 새로운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그들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게 된 것처럼 말이다.
우물 밖으로 나가기
남들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공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용기이다.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들의 삶을 응원하며 나도 곧 그들을 따라 세상으로 나아 갈 계획이다. 제주에서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의 경험, 만난 사람들 모두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주변 환경은 참 중요한 것이다. 만약 예전의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주에서 잠깐 살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J-Space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해 볼 것을 추천한다.
2018년 3월부터는 제주를 떠나 서울에 있을 예정이다.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한국을 떠나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것이다. 나는 아직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짓’을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다. 그런 짓들을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디를 가던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세요. 세상은 넓고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짧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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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book 의 네번째 연재작은 제주도에서 만난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마드 워커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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