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수행을 시작한 별 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별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필요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고, 주변 사람들은 내가 필요 없는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냥 그러고 싶었다. 여전히 특별한 계기도, 특별한 목적은 아니다.
나는 정통적인 묵언수행의 모양새는 모른다. 알았다고 해도 따르지 않았을 것이며, 수행에 형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고, 그 필요 없는 말을 억지로 참는게 아니라 애초에 떠올리지도 않는 것이 묵언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심각하게 어려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필요 없는 말을 참지 못 해서 내뱉은게 아니라, 필요 없는 말을 억지로 짜냈으니까.
하지만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생각해보니 묵언수행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정통을 따지지 않겠다고 했지만 잠시 묵언수행의 목적을 생각해보자. 고타마 싯다르타부터가 고행이 곧 수행인건 아니라 가르쳤으니, 나를 괴롭게 하는게 목적은 아닐 것이다. 정통에 따르더라도, 실리를 따르더라도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 목적이 있지는 않다. 따라서 하고 싶은 말을 참을 뿐인게 아니라, 진정 잡념이 사라지는 경지를 위한 수행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 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아야 한다. 일방적으로 의사소통을 거부하면 상대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다. 나 자신을 갈고 닦기 위해서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는게 얼마나 우스운가? 그래서 묵언수행은 일방적인 의사소통의 단절이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우선, 상대에게 내가 묵언수행 중임을 밝히는 것도 하나의 의사표현이다. 그리고 그 의사표현으로, 상대의 행동이 바뀐다. 상대가 내가 묵언수행 중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말을 하게 된다. 그런 상대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말을 아끼게 아니라 애초에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묵언수행 중임을 밝히지 않는다면 상대는 나에게서 일방적으로 차단 당하는 것이 된다.
이러나 저러나 당시에 나는 어렸고 내 기준에서는 인간이 아니라 반인반수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따라서 내 묵언수행이란 그저 반인반수 특유의 자기중심적인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왜곡되었을지 모르는 내 기억에 따르면 별 다른 문제는 없었다. 꼭 말을 해야하는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묵언수행은 본질적으로 말을 하지 않기 위한 수행이 아니라 말을 아끼기 위한 수행이며, 나는 형태에 집착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꼭 필요한 말은 해도 상관 없었다. 하지만 반인반수였던 나에게는 그만큼의 지혜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꼭 말을 해야할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쪽지를 남겨놓았다.
Meditation이 들어가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Medication으로 읽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물었지만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고, 나에게 글로 써달라고 했다.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는건 아무 가치도 없었다. 묵언수행은, 앞서 말했듯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게 목적이 아니다. 그렇게 내 묵언수행은 끝이 났다.
어쩌면 짧은 수행이었지만, 내 묵언수행은 가치를 다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에 속하는 쪽지를 남겼고, 그래서 결국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을 해야만 했다.
수면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