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독자 분들 중 역사적 제약(Historical Constraint)를 기억하시는 분들보다 그 당시엔 계시지 않던 분들이 많다. 그래서 역사적 제약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 시작하겠다. 진화란 국소적으로, 당장의 생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진화에는 큰 그림이 없다. 그러다보니 불합리한 구조가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의 역망막(Inverted Retina)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역망막으로 인해 우리는 뇌의 20%를 안구에 맺힌 핏줄을 보정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망막박리의 위험도 안고 있다. 우리의 안구가 당장에 뇌에 더 나은 시각적 정보를 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다. 이를 역사적 제약이라 한다. 앞으로 자연선택이 아무리 반복되어도, 인간의 안구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불장에 이불을 마구 쑤셔넣고 억지로 문을 닫았다고 생각해보자. 이불장의 이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불솜이 망가진다. 하지만 이불장을 열어버리면 이불이 다 쏟아진다. 혼잡하게 쏟아진 이불들을 잘 정리하고 이불장에 다시 넣는건 처음부터 방바닥에 늘어져있던 이불들을 개어 이불장에 넣는 것보다 어렵다. 한번 일어난 일을 돌이키는게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에 썩 좋은 비유는 아니다. "그냥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오랜 속담에서 만족하는게 나았겠다.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소비자들에게 선택 받을 수 있는 재화를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인지적 결함을 공략하기에, 우리는 흔히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휘둘린다 여긴다. 하지만 시작은 소비자의 마음에 들기 위함이다. 소비자의 인지적 결함을 생산자가 만들어 낸게 아니라, 소비자가 태초에 가지고 있던 인지적 결함을 공략하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소비자가 충분히 현명하여 그러한 시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생산자는 소비자의 본성을 오남용하지 않았다. 결국 거칠게 이야기하면, 소비자가 생산자를 만들어낸다.
일본의 문화컨텐츠 시장은 기이함의 결정체이다. 일본의 음반시장을 보면, 일본에서는 음반이 음반으로서의 가치가 아닌 가치를 지닌다. 가령 아이돌 그룹의 앨범을 산다면, 제각각 다른 멤버의 사진이 들어있거나 앨범 구매를 통해 참석할 수 있는 콘서트나 팬미팅, 싸인회가 있다. 그래서 팬들은 음반을 음반으로써 소장하기 위해 구매하는게 아니라 음반을 구매한다는 행위를 위해 구매하고 있다.
게임 시장은 어떤가? 일찍이 일본 게임은 세계를 정복했다. 가정용 콘솔기기, 오락실에서 쓰이는 아케이드 기기, 그리고 거기서 구동되는 게임까지도 일본이 주도했다. 이는 PC의 시대가 오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슈퍼 마리오, 돈키콩, 포켓몬, 스트리트 파이터, 파이널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들의 선두에는 일본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특별히 몰락하진 않았다. 일본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동안에도 자리를 지켰으니 성과는 분명하다. 하지만 더 이상 세계는 그들에게 열광하지 않는다. 음반시장에 있었던 일과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작년부터는 조금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그 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다루어 보겠다.
일본에서 일어난 일은 문화컨텐츠 시장에서는 모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자, 내가 책 한권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고 하자. 내가 받은 만족감만큼의 보상을 작가에게 제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게 있을까? 우선은 그 작가의 책들을 모조리 살 것이다. 하지만 그 작가가 낸 책이 한권 밖에 없다면? 내가 그 책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몇권을 더 살 수 있겠지만 여전히 그게 한계다. 작가에게 후원계좌가 있다고 해도 그 작가의 책을 10권 사는 일보다 10만원을 후원하는게 심적으로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일본에서는 그 한계를 넘었다. 한가지 제품을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만들어낸다. 별 차이도 없는 변종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이 방법으로 수집욕이 강한 골수팬들의 골수까지 빨아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당시에는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일본 경제가 위축되며 기업을 유지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 되었을 것이다. 개발에 쓸 돈이 없으면 상품의 질이 떨어지고, 상품의 질이 떨어진다면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는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래서 기업이 유지되기 위한 자금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은 그들을 바꾸어놓았다. 그렇게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생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큰 이윤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전과 같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부분유료화라는 강력한 모델, 무료화를 토대로 대중성을 얻고, 충성고객들은 끝도 없는 비용을 지불한다. 그 성공은 그들의 눈을 가렸다. 그들은 더 이상 멋진 게임을 만들 수 없다.
이쯤에서, 성공했는데 무슨 문제냐는 분도 계실 것이다. 제록스가 좋은 예시다. 제록스에는 팔로알토 연구소라는게 있다. 거기서 태어난게 GUI, 유비쿼터스 컴퓨팅,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이더넷 등이다. 이들의 시제품에는 터치패드 타블렛, 마우스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 연구소에 스티브 잡스가 방문했고, 그 후에 탄생한게 매킨토시다. 당시에 제록스사는 레이저 프린트의 성공으로 그 아이디어들을 상용화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만약 바로 앞이 아닌 먼 미래를 보았다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의 자리에 제록스가 놓여있었을 것이다. 시대를 수십년은 앞서서 내다본 팔로알토 연구소의 가치를 진작 알아보았다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를 훨씬 능가할 위대한 기업이 되었을 수도 있다. 싸이월드는 페이스북에 버금갈 서비스가 될 수 있었고 네이트온도 카카오톡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게임계에서도 시총 수조, 수십조에 해당하는 거대 기업들이 지난 1년간 시총이 2배씩 올랐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내수시장과 동남아, 중국시장에 힘입어 제자리는 지키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비이성적, 비합리적 소비에 눈이 멀어 이를 추종하다가 언젠가는 도태될 것이다.
이 교훈을 글을 쓰는 것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은 주제에 안주하고 계속해서 발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글은 언젠가 도태되고 읽히지 않을 것이다. 안주하지 않는건 정말로 어렵다. 미래를 보는 통찰력은 커녕 1시간 뒤의 식사메뉴도 내다보지 못 하는게 우리 인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