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껌 씹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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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hewriter











  30대 후반의 회사원. 직급은 과장. 미혼. 더 보탤 게 없는 단순하고 간략한 프로필. 그래도 스트레스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다.
  직장 생활이라는 게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보통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 아니다. 요즘 같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위에서는 압박해오지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지, 마음 놓고 있다간 아차 하는 순간 퇴출이다. 한마디로 사랑니 같은 신세다.
  이럴 땐 역시 껌이다. 담배나 술로 스트레스를 풀던 시절이 있었다는데 지금처럼 기능성 껌이 다양하게 개발된 사회에선 그런 미개한 방식을 취할 이유가 없다. 미래의 역사학자들이 이 시기를 껌의 시대로 정의한대도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감기 예방 껌, 두통 치통 생리통용 껌이 나온 이후 지금은 기분 좋아지는 껌, 침착해지는 껌처럼 정신에 작용하는 것까지 등장했다. 물론 이런 껌들이 모두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기분 좋아지는 껌 같은 건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
  나도 최근에야 긴 상담 끝에 기분 좋아지는 껌을 씹을 수 있었다. 그건 말 그대로 기분 좋아지는 껌이었다! 파란 껌을 입에 넣고 이쪽 어금니에서 저쪽 어금니로 천천히 씹으면 상쾌하고 달콤한 느낌이 가득 퍼진다. 그 느낌은 내 몸 구석구석 퍼져 딱히 뭔가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어제 물렸던 코인이 자고 일어나니 떡상한 느낌이랄까.
  부장의 꾸지람도 이 껌 앞에선 소용없다. 승진에서 탈락해도, 내가 산 토큰이 스캠이어도 나를 화나게 할 수 없다. 이 껌만 있으면. 그런데 아쉽게도 이건 극히 소량만 처방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 떨어지면 의사의 진단을 또 받아야 한다. 그게 내가 지금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 이유다.
  “다음 분 들어가세요.”
  드디어 내 차례다. 의사 양반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그래, 일주일 동안 어떠셨나요?”
  “아, 정말 대단하던데요. 그렇게 기분 좋은 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기분 좋은 사람답게 솔직한 대답이 술술 나온다.
  “하하하, 그래요.”
  의사가 껌을 질겅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 껌이 효과가 탁월하긴 하죠. 중요한 건 그 껌을 씹으면서 지금껏 잊어버렸던 감정, 즉 기분 좋음을 되살리는 데 있습니다. 환자분의 표정을 보니 치료는 충분히 된 것 같군요.”
  좋았던 기분이 의사의 마지막 말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저… 그러면 껌을 더 안 씹어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더 이상 껌을 씹지 않아도 됩니다.”
  빌어먹을 의사 놈! 내가 비싼 진료비 내가며 여기 앉아있는 이유가 뭔데!
  “ 전 그 껌이 더 필요합니다.”
  “안 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병세는 지난 일주일 동안 처방한 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내 간곡한 청을 의사 놈은 단호히 잘랐다. 껌을 질겅거리며. 저 녀석이 씹는 껌은 대체 뭐야? 썩을 놈. 턱이나 빠져 버려라!

  병원에서 돌아온 뒤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 내게 대리 하나가 용감하게 말을 걸어왔다.
  “과장님, 밖에서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안 좋은 일은 뭐....... 그냥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그런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 표정이 밝네.”
  “좋은 일은요 뭐…....”
  멋쩍은 듯 웃는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 보인다. 평소의 무기력하고 자신 없던 얼굴이 아니다.
  “이봐, 뭐 좋은 거 있으면 같이 공유하자고. 나 요즘 정말 죽을 것 같아.”
  대리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주위를 힐끔거리다가 이윽고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 좋은 거 있는데 비밀로 하시면 알려 드릴게요.”
  “뭔데?”
  “이거요…….”
  대리가 주머니에서 슬쩍 꺼낸 것은 낯익은 포장지의 껌이었다.
  “난 또 뭐라고. 그 껌 좋은 건 아는데 의사가 처방을 안 해주니 어쩌겠나. 그림의 떡이지, 뭐.”
  “아이, 과장님도. 누가 이걸 의사한테 처방받고 사요.”
  “아니 그러면 이걸 그냥 살 수 있다는 얘기야?”
  내 순진한 물음에 대리는 키득거리며 더 은밀하게 속삭였다.
  “물론이죠. 어둠의 경로이긴 하지만…….”

  “껌 사세요, 맛있는 풍선껌 사세요.”
  퇴근길에 대리가 알려준 거리에 들어서자 바구니를 끼고 호객 중인 소녀가 있다. 대리 말대로라면 저 소녀가 판매업자와의 중간 다리가 틀림없다.
  “무슨 껌 드릴까요? 사과 맛, 딸기 맛, 오렌지 맛...... 온갖 맛이 다 있어요.”
  껌을 고르는 척 바구니를 뒤적거린다. 역시나 시시한 과일 맛 껌밖에 없다. 물론 알고 있었다. 선뜻 용기가 안 나는 까닭에 시간을 끌었을 뿐이다. 소녀가 재촉하듯 커다랗고 맑은 눈으로 나를 빤히 본다.
  “이런 거 말고… 그거 없나?”
  “네?”
  “그거 말야. 달콩이…”
  달콩이는 기분 좋아지는 껌을 가리키는 은어라고 했다. 소녀가 껌을 짝짝 씹어대며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나는 지갑을 꺼내 1만 사토시에 달하는 다크 코인을 소녀에게 찔러 넣어주며 덧붙인다.
  “아는 사람 소개로 왔는데, 일단 한 열 통쯤 줄 수 있나?”
  자기 지갑에 뜬 액수를 확인한 껌팔이 소녀가 마침내 따라오라며 고갯짓한다. 어두컴컴한 뒷골목 구석에 이르자 소녀가 작은 철문 하나를 두드린다. 철문에 난 작은 쪽문이 덜컹 열리더니 부리부리한 눈이 소녀와 나를 번갈아 노려본다.
  “달콩이 열 통.”
  소녀가 쪽문에 대고 무심히 말하곤 이제 내 차례라는 듯 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거린다. 나는 미리 준비한 40만 사토시 어치의 다크 코인을, 진작부터 지갑을 내밀고 있는 사내에게 건냈다.
  “기다리슈.”
  사내가 쪽문을 닫고 돌아간다.
  “받고 나면 저쪽 길로 나가요. 전철역이 바로 나오니까.”
  소녀는 내게 길을 가르쳐주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사내의 부리부리한 눈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가 쪽문을 통해 열 통의 껌을 건네준다.
  “다른 껌도 취급하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하슈.”
  나는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떨어지면 또 오지요.”
  그때 별안간 철문 뒤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난다. 사내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철문이 덜컹 열린다.
  “젠장, 짭새다!”
  뛰쳐나온 사내가 짧게 뱉은 말이 귀에 꽂힌다. 우리는 같이 골목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당신, 나 본 적 없는 거야! 알았수?”
  사내의 당부가 떨어지기 무섭게 골목 끝 어둠 속에 숨어있던 경찰들이 무더기로 튀어나온다.
  “잡아!”

  모든 일은 순식간에 끝났다. 나를 붙잡은 형사는 내 주머니를 꼼꼼히 뒤져 달콩이 열 통과 지갑을 찾아냈다.
  “당신을 약물 거래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약물 거래법 위반이라니. 그저 기분 좋아지고 싶었을 뿐인데. 마약도 아니고 말이야. 나를 잡은 형사는 인정 많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얼굴에 대고 호소했다.
  “형사님, 저 진짜 처음인데 한 번만 봐 주세요. 그 지갑에 50만 사토시 있습니다. 다크 코인으로...”
  형사가 내 지갑을 흘끔 보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집에 가서 더 보내드릴게요!"
  다급하게 속삭였으나 형사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껌만 질겅거린다.
  “소용없습니다. 저는 지금 냉정해지는 껌을 씹고 있거든요.”
  그가 내게 수갑을 채우며 덧붙인다.
  “단물이 거의 다 빠지지 않았다면 뇌물공여죄를 추가했을 겁니다.”
  인정 많은 얼굴의 냉정한 형사가 넋 나간 내 입에 껌 하나를 쑥 밀어 넣어준다.
  “담담해지는 껌입니다. 씹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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