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도 성공하는 스팀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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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시체의 산 위에서 사랑을 외치다




코인판에 좀 있었던 분들은 한 번쯤 들어 봤을 말이 있다.

"대호황장에서의 투자는 원숭이도 성공한다."

왜? 아무거나 사도 오르니까.
그런 상승장에서는 자신이 거둔 성취에 대한 평가를 왜곡시키기 쉽다. 수익을 낸 요인에 '운'이 크게 작용했음을 인정하지 않거나 평가절하 한다. 반대로 자신의 실력, 어느 시점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들어갈지 결정을 내린 자신의 판단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크게 부풀린다. 한마디로 자만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만은 그 자체로는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잃은 사람 입장에선 보기에 고까울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그냥 "아~ 코인판 진짜 짜증나네. 완전 사기네ㅠㅠ" 정도의 투정을 늘어놓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런데 갑자기 돈 좀 땄다는 양반에게서 공격이 훅 들어온다. "왜 코인판을 욕해? 자기 실력이 부족해서 잃어 놓고?"

내 노력과 실력이 내 성공의 요인이라고 우쭐하는 건 자만이지만, 네 노력과 실력이 네 실패의 요인이라고 말하는 건 오만이다. 노력과 실력은 수치화 혹은 실체화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상대적 비교를 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스포츠 리그가 그렇다. 리그 우승팀=리그 최강팀이라는 공식이 매번 옳을 수 없다. 대진운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 때문이다. 올해의 리그 우승팀=역대 최강팀이라는 공식은 더더욱 성립할 수 없다. 리그의 수준은 매번 변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조섞인 우스개소리로 현재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스펙이 한반도 사상 최고라고들 한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더 노력하지 않아서, 절실함이 없어서, 다 쓸모없는 스펙뿐이고 당장 통용될 실력은 부족해서' 취직을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런 사람들을 '꼰대'라고 부를 것이다. 연세 지긋한 분들이 그러는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옆에서 한술 더 뜨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에 좋은 데 취직한 친구다. 듣자하니 그 친구는 인맥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눈치채셨겠지만 이 글은 코인판만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 동시에 이곳 스팀잇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어제 올린 두려움 없이 글을 쓰는 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체의 산을 목도한 데서 비롯한다.

시체의 산.
그것은 비단 코인 차트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스팀잇이 지금처럼 호황을 누리기 전에 들어왔다가 버티지 못하고 떠나간 수많은 흔적들이 영구히 박제된 채 이곳에 존재한다. 나는 그들의 흔적이 지금까지 스팀잇에 남아 이곳을 지키고 키워온 분들 못지 않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놓고 간 컨텐츠 때문이 아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들의 행위와 존재 자체가 지금 스팀잇 사회의 함의를 도출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떠난 그들에게 '네가 스팀잇에서 성공 못한 건 가치있는 컨텐츠를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아니면 나만큼 노력하지 않았던가'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같은 말을 고래가 아닌 스티미언 전체에 적용하면 어떨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스팀 파워라는 파이를 나눠먹는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이 파이의 양은 한정돼 있다. 누군가 이만큼의 양을 가져가면 다른 누군가는 저만큼의 양 밖에 못 먹는 곳이다. 파이를 나누는 기준은 양질의 컨텐츠에 있지 않다. 애초에 양질의 컨텐츠라는 걸 측정할 척도도 없다. 내 글은 소설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체리가 얹힌 파이 한 조각의 가치가 있겠지만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글자수만 많은, 크러스트 한 조각의 가치도 없는 컨텐츠일 수 있다.

나는 운 좋게도 내 글을 좋아하는 분들의 도움으로 고래분들의 보팅까지 받을 수 있었다. 고래의 보팅으로 불어난 달러는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고래의 댓글은 글에 대한 인증 마크처럼 작용한다. 소위 있어빌리티가 상승하는 것이다. 보팅이 폭발적으로 추가되고 댓글이 달린다. 이런 일의 전개 과정과 결과는 내 노력이나 실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렇다. 이건 어디까지나 운이다. 내가 글을 올린 그 시점에 고마운 분들이 내 글을 발견한 것도, 그분들의 리스팀과 홍보를 보고 고래분들이 온 것도, 마침 고래분들이 내 글에 보팅할 여력이 남아있던 것도 운이 좋았던 덕분이다. 반대로 같은 시각에 (내 기준에서)더 좋은 글을 썼음에도 적절한 태그를 몰라서, 고래를 부를 만한 친화력을 가진 팔로워가 없어서 묻힌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 또한 그분들의 노력이나 실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고래나 영향력 있는 스티미언을 찾아 팔로워하고 어필하는 것도 실력이며 노력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허나 똑같은 행위를 하고도 단지 운이 나빴던 분도 있을 것이다. 늘 상주해 있던 고래가 하필 그 타이밍에 한 잔 하자며 불러낸 친구를 따라 밤새 달리고는 아침 첫차로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쓰러져 잤을 수도 있다. 그렇게 불운이 겹치고 이어져 온 뉴비는 한탄 섞인 한마디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때가 중요한 순간이다. 그들을 좀 더 보듬어 안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서 나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세상은 원래 불공정한 곳인데(그리고 그리 불공정해 보이지도 않는데) 언제까지 그런 볼멘 소리를 들어줘야 하느냐 하실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인류 역사는 대략 5천 년인데 아직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스팀은 이제 시작하는 역사다. 그것도 원숭이가 해도 성공하는 코인판만큼은 아니지만 불과 반년 전에 비하면 높은 확률로 돈을 벌 수 있는 대호황장에 서 있다. 그런 볼멘 소리조차 너그럽게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없다면 그런 여유가 생길 정도로 크게 성공하시길 기원한다.

하나 더 바람이 있다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운'과 '겸손'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많은 분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주시면 무척 고마울 것 같다. 겸손이라는 개념이 점점 우리 사회에서 가치를 잃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거나 자신의 실력을 평가절하 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온 운은 담담히 받아들이고 상대가 운을 놓친 것에 대해선 깊은 위로를 건네는 행위라고. 우리가 사는 곳은 운에 있어서 마저 절대 공평할 수 없으니까.

이 모든 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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