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20

Words
1138
Reading
6 min
Listen
Play
8y

별을본다_03.jpg
ⓒkim the writer










   운명. 그 말을 혐오한다. 사람들은 불가항력적인 일과 마주쳤을 때 운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 거대한 파도 앞의 조각배처럼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변명. 그것이 운명의 민낯이다.

   운명. 그 말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유혹하고 쉽게 망가뜨렸던가. 운명을 믿는 순간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는다. 운명에의 굴복은 자신의 무력함이 빚어낸 일이 아니라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초월적 힘에 고개 숙인 것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건 뒤따랐을지도 모를 책임과 비난에서 벗어남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평안과 위안을 주는 묘약이 된다.

   전통적으로 지배자들은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그 말을 써 왔다. 너희가 그렇게 태어난 것은 운명이오, 너희가 나를 따르는 것도 운명일지니. 종교와 만나 더욱 큰 힘을 얻은 그 말에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순종해 왔다. 자신의 삶이 지배자를 위해 쓰이는지도 모른 채 저항의 의무를 망각하고 말았다. 그러다 먹고 살 만한 시대가 도래하니 사람들은 이제 온갖 쓸데없는 곳에 운명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만난 것도 운명, 헤어진 것도 운명, 누군가가 태어난 것도 운명, 죽는 것도 운명……. 그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인가. 자신이 운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세상이 무수히 많은 인과의 톱니바퀴를 돌렸다는 생각은.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 인과는 의지가 없다. 세상의 중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자기 자신 그리고 운명을 함께 할 몇몇을 위해 온 세상을 동참시켜 원인과 결과의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게 아니란 말이다. 다른 모두를 들러리로 만드는 일은 생일잔치와 결혼식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운명. 그래서 나는 그 말을 혐오한다. 만들어지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았을 무수한 발명품과 함께 모르도르의 오로드루인에 던져야 마땅한 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사고를, 그래서 아버지가 죽고 내가 20여 년을 감금당해야 했던 일을 어떻게 운명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 일이 그렇게 되는 게 마땅했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런 운명에 맞서는 게 인간이 가진 위대한 힘이라고 주장한다. 틀렸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빚어낸 인과의 연쇄작용이 우리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뿐이다. 아버지를 앗아간 건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아니라 음주운전자였다. 그자가 음주운전을 선택한 일과 아버지가 병원으로 차를 몬 일이 빚어낸 참극이었을 뿐이다. 그전에 일어난 무수히 많은 선택은 그 사고를 만들기 위해 있었던 게 아니다. 우리가 무심히 넘기는 매일의 모든 일처럼 아무런 의지도 없었다. 다른 점이라고는 그로 인한 결과가 내게 도드라지게 컸다는 것뿐. 그 일이 일어나는 것에 어떻게 맞선단 말인가? 그 일의 결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운명에 맞선다는 말은 고작 그런 것이다. 그저 일어난 일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의 연속, 단지 그뿐이다.

   운명. 그럼에도 나는 그녀와의 재회를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은 운명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 일은 빌딩 숲 한가운데 있는 사거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건널목 너머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었다. 나는 멍하니 땅바닥을 내려다보느라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바닥난 인내심을 쥐어짜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짧은 비명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건너편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그들 사이로 어떤 여자가 쓰러져 있는 게 얼핏 보였다. 멀뚱히 구경만 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쓰러진 여자를 살피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태양처럼 빛을 내며 주위에 흐르는 시간을 잡아두었다. 나는, 우리는, 인간은 단순하다. 끌리는 게 있으면 단숨에 끌려간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일단 그것의 중력장에 사로잡히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된다. 지구로 날아드는 소행성처럼,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별 부스러기처럼.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의도치 않은 운동에 접어든다. 그 대상이 사람이고 그 끌림을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태양에 이끌린 지구처럼 지구에 이끌린 달처럼 영원한, 아니 엄밀히 말해 영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지만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인 나날 동안 포로가 되기를 꿈꾼다. 나는 절대 풀 수 없는 방정식의 해답을 꿈속에서 찾은 기분이었다. 그 무렵 나는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인간쓰레기처럼.

   나는 한동안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가급적 이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커피 트럭 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뭐, 나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센터에 가는 일이 걸릴 뿐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수지 큐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혼자 머리를 쥐어뜯고 끙끙거려도 답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그날이 왔을 때 미처 예상치 못한 식으로 일은 해결되었다.

   “다른 팀으로 옮겼어. 며칠 됐지.”

   퍽. 지미의 말이 나를 강타했다.

   “얘긴 들었다. 헤어졌다며.”

   입안에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이젠 얼굴조차 보기 싫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니 이해는 가면서도 섭섭한 감정이 들었다. 특별한 조치를 바랐던 건 아니다. 다만 이별이라는 길의 끝에 확실히 도착했다는 느낌이 썩 좋지 않았을 뿐이다.

   “이래서 사내 연애는 할 게 못 돼. 끝이 안 좋으면 사람까지 잃게 되니.”

   너스레로 가장해서 지미가 서툰 위로를 시도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내 삶은 조금씩 변해 갔다. 그 속도는 이웃들과 친해지는 것에 정비례했다. 내 삶은 빠르진 않지만 꾸준하게 궤도를 이탈했다. 이웃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불안과 초조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 현재는 더더욱 암울한 삶. 다른 부분에서는 전혀 공유할 수 있는 게 없는데도 어두운 단면에서 동질감을 느끼니 강력한 유대감이 그들과 나 사이에 형성됐다. 그것이 내가 그 위험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법이다. 술, 담배, 마약……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들을 유일한 해방구로 삼고 사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은 내게 같은 일탈을 권했다. 순수한 의도라기보다는 한낱 상술에 가까운 권유였다. 처음에는 마다하던 나도 맛보기로 한번 경험하고 나니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어 마침내 습관적으로 약을 찾게 되었다. 마음에 결핍된 요소를 채우기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내 선택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분명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상관하지 않았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망가뜨릴 자유가 있으니까. 그러나 약효는 일시적이었고 한 번 할 때마다 더 큰 결핍을 초래했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을 약에 취하는 데 썼다. 한마디로 중독된 것이다.







-계속













공지

  • 제 블로그는 댓글 살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 취지 및 이용 방법

  스팀잇-라이프 밸런스는 많은 분이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포스팅-답글-방문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죠. 특히 답글의 경우는 댓글 주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하나하나 대댓글을 다는 게 도리겠지만, 정작 그러다 보면 정작 이웃분들의 포스팅을 읽고 거기에 댓글을 다는 시간이 부족해지기 마련입니다. 답글을 모두 달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음 포스팅이 꺼려지는 경우도 있으니 스라밸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선착순, 선별, 랜덤...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하다 포털이나 페북 등에 게시되는 컨텐츠가 떠올랐습니다. 작성자에게 다는 댓글이 아닌, 컨텐츠에 대한 얘기를 유저들끼리 자유롭게 나누는 방식이라 무조건 정성 댓글을 달아야 한다는 부담에서도 해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포스팅에서 그런 방식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제가 아래 용도별로 댓글을 답니다. 여러분은 제 댓글 밑에 대댓글로 달아 주시면 됩니다.

예시
[홀] 감상&잡담
  [김작가] 지미 좀 꼰대 같아요.
      ㄴ[김반장] 22222222
      ㄴ[김십장] 33333
            ㄴ[김통장]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잭이 더 꼰대 같죠. 융통성 없음요.
                        ㄴ[김사장] 잭은 젊꼰 지미는 그냥 꼰
                                    ㄴ[김회장] 둘이 쌍둥인데요...
[김소장] 이번 편 분량 훌륭합니다.
[김원장] V의 날은 언제 나와요?
      ㄴ[김박사] 그걸 아직도 기다리고 계시다니...ㅠㅠ
            ㄴ[김석사] 이런 질문은 사무실에 달아야 하지 않나요?
                        ㄴ[김원장] 아, 그런가요... 처음이라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ㄴ[김석사] 저도 몰라서 여쭤본 건데요...

[사무실] 제보 및 기타는 이곳에 달아 주세요
  [김이장] V의 날 언제 나와요?



  • 구분
    [홀] 감상&잡담: 지금까지처럼 포스팅 관련 댓글을 남기는 용도입니다. 이쪽에는 별도의 답글을 남기지 않을 겁니다.
    [테라스] 홀과 같은 용도입니다.
    [끽연실] 제가 트위터처럼 쓰는 곳입니다.
    [사무실] 오타/오기/오류 등의 제보 혹은 저를 호출하실 일이 있을 때 쓰시면 됩니다.
  • 다른 유저가 남긴 댓글에도 부담 없이 대댓글을 달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겠습니다.

  • 잘 모르는 분에게 대댓글을 다실 때는 오해나 감정 상할 만한 일이 생기지 않게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오늘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20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