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kangsukin 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2000년에 발표된 성석제의 단편 소설입니다. 아주 오래된 소설이기도 하고, 주요 배경이 농촌 마을이기에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내면은 한 인간과 그 인간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보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단편 소설을 접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떤 이야기이고, 제목처럼 황만근이라는 주인공이 어떤 말을 했을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항상 소설이나 글을 읽을 때면 제목에 우선 눈이 가고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하곤 합니다. 신문에서도 제목이 있고 부제목이 있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러한 단편소설에서도 그러한 효과를 기대해 보곤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읽기 전에 좀처럼 어떤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도시문명과는 동떨어진 어떤 한 농촌에서 시작됩니다. 어느 날 황만근이라는 사람이 마을에서 보이지 않고 그걸 느낀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그가 어디에 갔을까,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건이 있었고 하는 그에 대한 일화들을 늘어놓습니다.
마을에서 반푼이 바보취급 당했던 황만근은 전쟁 때 아버지가 죽고 편모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지능이 모자라 아이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었고, 늘 넘어지곤 했습니다. 또한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 그의 발음을 가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자살하려는 처녀를 구해 아들을 얻지만 처녀는 떠나버리고 그는 어머니를 봉양하고 아이를 부양하며 살아갑니다. 마을의 똥구덩이를 파거나 마을 제사를 지낼 때 돼지를 잡는일같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온갖 궃은일을 도맡아 합니다. 그는 이러한 일을 하면서도 싫은 내색을 하지도 않으며 대가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일을 일반사람들의 반값에 시키거나 그냥 시켜먹는 일을 하면서도 전혀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던 황만근이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집니다. 신체검사를 받던 날 외에는 단 하루도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는 황만근이 사라지자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 그가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황만근이 사라진 걸 알게 된 것도 그가 평소에 궃은일을 했었고, 그가 없어지자 그것이 불편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사라지기전 그는 ‘농가부채 탕감 촉구를 위한 전국 농민 총궐기대회’라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이장의 지시대로 백리 길을 유일하게 경운기를 끌고 갔으며, 다른 사람들은 버스나 트럭, 승용차를 타고 갔었습니다.
홀로 경운기를 끌고 간 황만근은 백리길을 경운기를 타고가서 궐기대회에 참여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던길에 그만 사고를 당해 논바닥에서 동사하고 맙니다. 결국 황만근은 없어진 지 일주일 만에 아들의 손에 뼈를 모은 작은 상자로 돌아옵니다. 배경이 인적드문 농촌인데도 이 소설을 읽고 난 저의 느낌은 우리내 도시의 현실과 다를바 없었습니다. 왜인지 소설속에 등장하는 황만근이라는 사람은 해학적 느낌과 함께 일어난 이야기들을 보면, 우스운데 전혀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울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황만근은 동네마다 한명씩 있을법한 반푼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잠시 살았던 한 농촌 마을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약간 어눌하지만 순박하고 시키는 일에 불평없이 도맡아하는 그런사람, 하지만 마을사람들에 이용만 당할뿐 존재조차도 느껴지지 않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일에 쓰이지만 않는다면 전혀 아쉽지 않는 그런 사람의 존재로 느껴지는 불쌍한 사람...
만약 황만근이 과거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농경사회에 살았더라면 바보 취급을 당했을까요?
이야기속에 나오는 황만근이라는 사람은 어머니를 지극히 모시고 봉양하는 아주 대단한 효자입니다. 어머니를 위해 고단한 일을 하고 나서도 어머니를 위해 밥을 하고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딜 나갈때면 항상 어머니부터 생각하고 항상 웃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마을에서 상을 받았을 정도로 효자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 마을에서도 바보 취급 대신에 착하고 훌륭한 청년으로 인정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서 황만근은 죽었습니다. 물론 밤에 경운기를 타고 오다 사고를 당해 동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황만근을 죽게 한 것은 척박한 농촌의 현실이며,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입장보다는 나만 생각하는 어떻게 생각하면 교활하고 약삭빠른 주위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단편소설 “황만근은 말했다”에서 내가 주의깊게 본 점은 바로 민씨라는 등장인물입니다. 이 소설의 민씨만 아니었더라면 나에게도 황만근이라는 존재는 바보로 보였을 것입니다. 민씨라는 사람은 황만근이 사라진후 그에대한 좋지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왜 그러는지 반박을 합니다. 급기야 이장과 싸우기까지 합니다. 그는 도시에서 귀농한지 얼마안된 사람입니다. 민씨는 황만근을 바보로 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귀농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면 황만근의 어린시절이나 어떤 사람인지 주관적인 입장이 아닐 것입니다. 귀농한 이후 황만근이라는 사람에 대해 그냥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민씨는 황만근에 대해 나쁘거나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생이라는 칭호를 붙일 정도로 좋게 평가합니다.
객관적이라는 것과 주관적이라는 것 어떻게 보면 별 차이 없을것처럼 보이지만, 주관적이던 농촌마을 사람들에겐 바보로 못박아졌을 것이고 마을 사람들 또한 그러한 평가를 내리는데에 어떤 근거가 있고 과연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주위가 그러하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틀림없을 것이다인 것이죠. 하지만 민씨는 소설 속에서 이러한 생각을 합니다.
농사를 짓되 땅에서 억지로 빼앗지 않고 남으면 술을 빚어 가벼운 기운은 하늘에 바치고 무거운 기운은 땅에 돌려주었다. 그러므로 선생은 술로써 망한 것이 아니라 술의 물감으로 인생을 그려나간 것이다. 선생이 마시는 막걸리는 밥이면서 사직의 신에게 바치는 헌주였다. 힘의 근원이고 낙천의 뼈였다. 경운기에는 비를 피할 만한 덮개가 없어서 선생은 뼛속까지 젖어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선생이 군청 앞까지 갔을 때 이미 허울뿐인 대회는 끝나고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에게 가져다 줄 생선을 사고 몸을 녹인 선생은 날이 어두워오는 줄도 모르고 경운기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경운기에는 빠르게 달리는 차량의 주의를 끌 만한 표지가 없어서 선생은 몇 번이나 사고를 당할 뻔했다. 그때마다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바람에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어두운 탓에 경운기는 길옆의 논으로 떨어졌고 수레는 부서졌다. 결국 선생은 그 밤 안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선생은 경운기에 실려있는 땅의 젖에 취하여 경운기 옆에 앉아 경운기를 지켰다. 그러나 경운기는 선생을 지켜주지 않았다. 추위와 졸음으로부터 선생을 지켜주지 못했다.
언제부턴지 모르게 착하면 바보취급 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은 이기적이고 때로는 나쁜짓이라도 이익에 정당하다면 해도 된다는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오히려 바르고 제대로 된 농사꾼이었던 황만근이 바보취급을 받고 외롭게 죽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것처럼 말입니다.
소설에서 황만근은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통해 현대에 소외받은 한 인간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죽음의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황만근은 삐뚤어진 사회 세태에 대해 한번쯤 느끼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