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 변신, 그닥 화려할 것 없는
@jjy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메밀국수가 습기가 차면서 떡반죽처럼 되었다. 냉장고를 교체하면서 급하게 정리를 한다는 것이 한쪽으로 밀려 오랜 시간 지나면서 그렇게 변한 것 같았다. 아깝기도 하고 먹는 것을 버린다는 것에 익숙치않은 나는 어떻게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일단 되는 대로 반죽을 했다. 그리고 반죽을 두 덩어리로 나누어 위생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두었다.
비는 연일 내렸다. 눈을 뜨면 빗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거나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집에 곰팡이가 핀 다거니 이불에서 냄새가 난다느니 하는 얘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옷장을 열어보니 가죽 옷이 푸른곰팡이를 달고 있다. 얼른 가지고 나와 마른 걸레로 닦아 바람이 통하는 곳에 걸었다. 어머니께서 바람을 워낙 싫어하셔서 선풍기도 어머니를 피해서 틀어야하고 에어컨은 엄두도 못 내고 산다. 실정이 그렇다보니 장마철에는 집에 습기가 많이 찬다.
지붕공사를 끝내고 나니 갑자기 가을 한 가운데로 들어선 느낌이다. 아침저녁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음식이 생각난다. 점심에 뭘 해먹을까 하다 수제비 생각이 난다. 다시 물을 내 감자를 썰어 넣고 메밀반죽을 꺼내 치대니 수제비 반죽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애호박도 나박나박 썰어 준비해 놓고 끓는 국물에 반죽을 떼어 넣었다. 애호박도 파랗게 익은 얼굴을 보여주려 떠오른다. 그릇에 담아내니 제법 그럴싸하다. 식탁에 앉으신 어머니께서 수제비를 보시더니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신다. 한 점 뜨시더니 쫄깃하고 맛있다 맛있다 하시며 국물까지 잘 드신다. 망가진 메밀국수라는 말씀은 차마 못하고 많이 드시라고 하니 방에 가만히 있으니 으슬으슬 했는데 몸이 확 풀린다고 좋아하신다. 폐품활용 치고는 성공한 셈이다.
바나나 껍질로 곰팡이 났던 가죽옷에 문질러 닦아낸다. 부스스하게 잃었던 윤기가 다시 돌아온다. 햇빛이 눈부셔서 잠시 하늘을 본다. 이런 오늘이 그날인가? 천사가 이불빨래 하는 날인지 커다란 솜 덩어리 같은 구름이 한가롭다. 마실 오신 친구분께서 춥다고 하시자 점심에 수제비 드셨다고 자랑이시다. 더 바랄 게 없이 이대로 감사할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