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문득 상해의 추억이 하나 생각나네요.
상해에 거주했을 때의 일이다.
통역을 도와주던 지인이 몇 일간 여행을 간다고 하여 기르던 개를 맡아주기로 했다. 중국에서 찐마오(金毛, 금빛 털)라 불리는 큼직한 골든 리트리버 종이었다.
지인이 특별히 부탁한 것은 아침 저녁 두 번의 산책이었다. 특히 아침 산책이 중요한데 대개 아침 배변을 산책길에서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꼭 흙이 있는 곳에서만.
이 녀석도 눈치는 빨라서 산책을 가려고 내가 목줄을 챙기고 있으면 신이 나서 냉큼 문 앞에 달려가 앉아 있는다. 빨리 목줄을 채우고 산책을 가자는 얘기다.
산책 코스는 가급적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길을 따라 공원을 돌아오는 코스로 잡았다. 시간은 출근길을 피해야 해서 가급적 일찍 잡아야 했지만 여름이라 해가 일찍 떠 큰 문제는 없었다.
그 날도 공원을 반환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찻길 건너편에 세퍼트 한 마리가 목줄을 질질 끌며 뚜벅뚜벅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주인을 잃은 것인지 주인이 버린 것인지 모르지만 저렇게 큰 세퍼트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덩치가 산만하다.
제발 이쪽은 보지 말아라. 그냥 너 가던 길로 가란 말이야.. 길 건너 편이었지만 방향을 마주 보고 걷던 차라 자못 긴장이 되었다.
그. 런. 데.
이. 녀. 석. 이.
슬. 금. 슬. 금. 길. 을. 건. 너. 오. 는. 것. 이. 아. 닌. 가.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침을 질질 흘린 채 우리 쪽을 응시하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세퍼트!
'아, 젠장!'
순간 별의 별 생각이 다 스쳐간다. 여기서 객사하나? 중국에서 외국인이 개를 패거나 죽이면 처벌이 있나? 정당방위로 인정 받나? 녀석이 우리 애를 먼저 물면 어쩌지? 애가 잘 못 되면 그 원성을 어떻게 하나? 나를 먼저 물면? 물 때 목덜미부터 물까? 팔을 먼저 물까? 다리를 물리면 어쩌지? 정수리를 쳐야 하나? 다리를 분질러야 하나? 그동안 배운 무술중에 개랑 싸우는데 도움이 되는게 있나?
여하튼 위와 같은 이미지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헌데, 그 뿐인가? 이 녀석이 다가오는 목적이 다른데 있는지 누가 알까? 우리 애기는 암컷인데 저 녀석은 왠지 수컷의 기세 뿜뿜이다. 이런. 이종(異種) 교배의 현장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나?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 저 녀석이 껄떡거리기라도 하면 어쩌지?
여하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천천히 걷고 있는데 이내 녀석이 다가와서는 우리 애기 앞에서 킁킁대기 시작한다. 뭐, 먹을거라도 있으면 저리 던져주고 가겠는데 참으로 난감하다. 우리 애기도 덩치가 만만치 않은데 녀석이 워낙 산만한 크기라 주변에 누가 도와줄래도 도와줄수가 없을 처지다.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 큰 개 앞에서는 기죽은 모습을 하거나 심하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려 공격을 당하기 쉽다. 그냥 쿨~하게 그려려니 하는 것이 제일 자극이 덜 된다고나 할까? 나는 (눈 앞은 깜깜했지만) 별 일 아니란 듯이 애기 목줄을 댕기며 가던 길로 걸어간다. 다행히 애기도 녀석에게 별 관심 없는다는 듯 시크하게 갈 길을 간다.
천만 다행으로, 녀석이 우리를 조금 따라오다가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 다시 제 가던 방향으로 돌아서 간다. 가끔 멈춰서며 우리를 쳐다 보기는 했지만.
그 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한 것이, 정말 우리가 농담같이 얘기하는 '대륙의 스케일'처럼 집채만한 세퍼트를 어떻게 이런 도시 한 복판에서 키우고 있던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침 인적이 드문 길에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설령 사람들이 있었다 한들 감히 어느 누구도 쉽사리 봉변을 당하고 있는 우리를 도와줄 생각을 못했지 않았을까 싶다.
저런 개가 도심을 어슬렁거리다니 당장 신고라도 해야할 판인데 나도 뭐 어디다가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런 상황을 신고하는 문화가 있기나 한건지도 모르는 데다가, 외국인이다 보니 이래저래 번거로워질 것을 각오해야 해서 그냥 넘어가고 말았지만 가슴을 크게 쓸어내린 것만은 사실이었다.
오늘 배터리를 사러 잠시 밖에 나갔다 오는 길에 유기견으로 보이는 강아지들을 세 마리 정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길을 배회하며 어슬렁 거리는 강아지들을 보니 문득 생각난 바가 있어 글로 적어보았네요. ㅎ